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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계승 혼인
또는 "시형제 혼인". 고대 유대인들이 가계(家系)를 계승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지켰던 한 결혼 제도. 히브리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후손이 없이 죽으면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중적으로 죽은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비극을 피하기 위하여 어떤 남편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의 형제가 그 혼자 된 여자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난 첫 아들은 그 죽은 남자의 자식으로 삼는 것이 관습이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가계를 보전하였다(신 25:5-10; 또한 마 22:24 및 그 병행구절을 보라). 만일 죽은 남자의 형제 중에서 그 의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 중 남자가 그 책임을 이행해야 했다(룻 4:1-12를 보라).
가나안 족속들
성경에 전해 내려오는 가나안 민족들의 명단(창15:19-21; 출3:8,17; 13:5; 23:23,28; 33:2; 34:11; 신7:1; 20:17; 수3:10 등)은 그 길이가 여러 가지인데, 그 이름의 대부분은 창10:15-19의 '민족들의 계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 아모리 족속 - '아모리 사람*'을 보라.2. 기르가스 족속 - 이 이름은 성경의 몇몇 명단과 베니게(페니키아) 비문들에만 나온다. 이들의 정착 지역은 알려져 있지 않다.3. 헷 족속* - 성경에서 이 이름은 흔히 가나안 땅의 이전 주민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킨다. 개별적인 지역을 지리적으로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4. 히위 족속 - 이들은 중부 팔레스티나에 살았는데, 수9:7; 11:19에 따르면 기브온 가까이에, 창34:2에 따르면 세겜 가까이에 살았고, 수11:3에서는 이들이 헤르몬 산기슭에 있었다.5. 여부스 족속 - 예루살렘 성읍과 그 주변에 본디 살던 사람들(수15:8; 18:28; 삼하5:6-9). 겔16:3,45에서는 이들이 헷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났다고 한다. 6. 갓몬 족속 - 이들은 창15:19에만 나오는데, 이 이름은 그저 '동쪽 사람들'을 뜻한다.7. 가나안* 족속 - 이스라엘 이전의 팔레스티나 주민을 뭉뚱그려 흔히 가나안 족속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본디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베니게가 한 번도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가 되지 않았으므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족속이라는 이름은 보통 베니게 사람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에게 쓰인다.8. 그나스 족속 - 나중에 유다 지파에 합류한 에돔계 씨족(민32:12; 13:6 참조).9. 겐 족속 - '겐 사람*'을 보라.10. 브리스 족속 - 이들은 다른 족속들과 함께 중부 팔레스티나 산지 주민으로 불린다.11. 르바 족속 - 요단 동쪽 바산의 원주민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거인 족속(창14:5; 15:20. 신2:11,20; 3:13의 '르바임'은 '르바 사람들'이란 뜻이다). 관련용어 : 가나안(사람)
가나안(사람)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팔레스티나)을 차지하기 전에 거기 살던 사람들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배 아래에서도 그 땅의 일부 주민들이 되었다(삿1:27-33). 오론테스 강 아랫부분에 살던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도 계보상으로 또 문화적으로 가나안 사람들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창10:15-19 참조). 가나안의 동쪽 경계는 요단 강이다. 가나안이란 이름은 주전 15세기에 처음으로 애굽의 한 문서에 블레셋 해안 지역까지 포함하는 지방 영토를 가리키는 말로 나온다. 그 뒤의 여러 문서에서는 블레셋 땅과 가나안은 구별된다. 가나안 사람들 말고는 아모리 사람*들과 헷 사람*들이 또한 팔레스티나 전체의 원주민으로 언급되고 그 밖의 다른 종족들도 열거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씨족들의 동맹이나 통치자 계층들도 들어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신7:1. '가나안 족속들*'). '가나안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은 여러 군데에서 '장사꾼, 상인'이란 뜻을 지닌다. 여기서 가나안 민족, 특히 여러 항구 도시에 사는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의 전형적인 활동이 드러난다(이 낱말을 욥41:6; 잠31:24; 사23:8; 호12:7에서는 '상고'로 옮겼고, 겔16:29; 17:4의 '장사하는 땅'은 문자적으로 '장사꾼의 땅'이며, 습1:11의 '가나안 백성'은 '장사꾼 백성' 곧 '장사꾼들'로, 슥14:21의 '가나안 사람'은 '장사꾼'으로 옮길 수도 있다). 관련용어 : 가나안 족속들
가나안/ 가나안 사람/ 가나안 족속
후에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틴(페니키아를 제외하고)으로 불린 땅의 이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점령하기 전의 그 땅 주민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나안 사람은 다음과 같은 여러 족속을 포함한다. "아모리 족속", 기르가스 족속(거주지 위치는 알 수 없음), "헷 족속"(거주지 위치는 알 수 없음. 어떤 경우에는 가나안 사람들을 일컫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용되었음), 히위 족속(팔레스틴의 중앙부), 여부스 족속(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 거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의 후손들), 갓몬 족속(창 15:19에서만 언급됨), 그니스 족속(창 15:19), 겐 족속, 브리스 족속(팔레스틴 중앙부에 거주), 르바 족속(창 14:5; "거인"이란 뜻).
가난(한), 가난한 사람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 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그들을 위해 하신 온갖 일을 보면 -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예 없어야 했다(신15:4-6). 몇몇 율법 규정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한 땅을 잃고서 남에게 매이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기업*', 희년*, 안식년*, 출23:6). 그런데도 가난한 모습이 드러난다면, 언제나 인색하지 않게 돕고 연대감을 지니고 처신할 것을 율법에서 명령한다(출22:21-27; 23:10-11; 레19:9-10; 신14:28-29; 15:7-11; 16:11-12; 23:24-25; 24:19-22). 특히 왕정기 이후로 성읍 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 이스라엘에서는 소유 및 경제력을 몇 사람의 손에 집중시키고 대부분의 주민층은 가난 및 종속의 상황에 빠뜨리면서 부자들의 파렴치한 착취를 초래하는 경제 형태와 행동 방식이 생겨났다. 예언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거듭거듭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개입하신다(암2:6-8; 5:11-13; 8:4-10; 미2:1-5; 사5:8-10; 10:1-4; 렘5:26-31; 겔22:29-31). 가난한 사람들이 곤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자신들의 변호자로 믿고 하나님께로 향하며 또 하나님만을 자신들의 유일하고도 참된 부로 굳게 붙들자, 가난한 사람들의 경건함이라는 특수한 종류의 경건함이 발전되었다(시9:9-10; 10편; 73:12-28; 잠19:1). 이에 뒤이어 가난한 사람들은 참으로 경건한 자이어서 하나님께 특히 가까이 서 있고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 것을 바랄 수 있는 반면, 부자들은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시22:24-26; 37편; 72:1-4,12-14; 140:11-13; 사29:19-21. 눅1:51-53 참조). 예수께서도 이 사상을 강력히 주장하시고 그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 있다고 하시고 부자들에게는 아주 매섭게 경고하셨다(마5:3-6; 눅6:20-26해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위해 또 앞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실 때 맛볼 엄청난 부 때문에 지상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셨다(눅12:31-34; 14:33; 16:9; 18:25. '예수님을 뒤따름*'). 성경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비사회적이고도 불법적으로 행동한 결과로 생긴 이런 가난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론 자기 잘못으로 겪는 가난에 대한 내용도 성경에 들어 있다(잠6:9-11; 10:4 참조).
가바다
예루살렘의 총독 관저 옆에 돌판을 깔아 조금 높게 한 자리인데, 이 위에서 판결을 내렸다(요19:13).
가브리엘
천사장 중의 하나. 단 8:16; 9:21을 보라.
가인
아담과 하와의 맏아들이고 아벨의 형인데, 동생을 쳐죽였다(창4:1-16).
가죽 부대
액체를 보관하려고 짐승(보통은 염소) 가죽으로 만든 자루 모양의 통(창21:14; 수9:13; 삿4:19; 삼상16:20; 욥32:19; 막2:22).
가죽 종이
'양피지*'를 보라.
가증하다
"부정하다"를 보라.
가증한 것
'가증함'이란 낱말은 제사 예배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정해서 종교 의식상으로 금지되어 있거나 부정하여 제사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정결한*'. 확장된 뜻으로는 잠3:32; 11:20; 15:8; 16:5; 28:9; 눅16:15; 계21:27. 이 가운데 잠28:9; 계21:27을 뺀 나머지 구절에서는 '[여호와 또는 하나님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란 식으로 번역되어 있다). 온갖 우상과 온갖 우상 숭배*가 이에 속한다는 것은 자명하다(왕상15:13; 왕하23:24; 렘7:30; 13:27; 겔20:7,30과 더 나아가서 딛1:16 참조). 단9:27; 11:31; 12:11의 '(멸망케 하는 또는 할) 미운 물건'은 예루살렘 성전이 안티오쿠스 4세에게 더럽혀진 것을 암시한다. 이 임금은 주전 168년에 성전 건물 앞 큰 번제단 위에 헬라의 신 제우스에게 제사 드릴 때 쓸 작은 제단을 세워두게 했다. 이로써 성소 전체가 '황폐해져서', 곧 종교 의식상으로 부정하게 되어 유다의 제사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고, 제사장들과 유다 회중이 쫓겨났으며 성전 지역에는 인적이 끊어졌다(1마카1:54,59 참조). 이 종교정책적인 조치는 셀류시드* 왕국의 통일성을 굳히기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1마카1:41-57과 참조). 막13:14(와 병행 구절)에 나오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은 <다니엘>에서 넘겨받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가 종교를 자신과 자신의 목적에 종속시키고 마침내는 국가와 국가의 대표자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자기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종교 의식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마지막 때의 환란은 그 절정에 이를 것이다(살후2:3-4; 계13장 참조).
가현설
그노시스*라는 정신 사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활동에 대해 주장하는 견해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현설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니라, 이제껏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제 예수 안에서만 스스로를 처음으로 드러내 보이신 참되고도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런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시다. 이 하나님은 악한 귀신인 여호와*와 그의 악한 피조 세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다(그랬다면 이는 이 악한 세상을 만들게 된 태초의 '사고'가 예수 안에서 거듭되었을 따름이고 사람의 '구속'을 위해 이루어진 바는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 '겉보기로만'(가현설이란 용어는 '겉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뜻의 헬라 동사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의 몸과 결부되었고 수난을 겪으시기 전에 다시 그 몸을 버리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그노시스')을 주심으로써 '구속'을 이루신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구속에 이바지한 바는 전혀 없다. 이 가현설이 머리를 들자 신약 성경에서는 이를 반대한다(요1:14; 요일4:2-3. 딤전2:5-6; 3:16도 참조). 관련용어 : 그노시스
간음
구약 성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바를 따르면 간음은 여자가 자기 남편과 맺은 혼인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남자가 다른 사람의 혼인 관계에 끼어드는 것을 말한다(출20:14,17. '혼인*'). 두 경우 모두 해당 남편의 '소유권'이 침해되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녀의 권리와 체면은 자녀 자신 및 해당 가족에게 문제가 된다. 간음죄를 지으면 남자든 여자든 돌로 쳐죽였다(레20:10; 신22:22-27; 잠6:20-35; 집회23:18-27. 겔16:38-40 참조). 예수께서는 간음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요8:1-11도 그런 식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마5:27-30 참조. 동터 오는 하나님 나라의 빛에 비추어보면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의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생각하시고 뜻하셨던 대로 진지하게 여겨야 하고(막10:1-9병), 혼인은 하나님이 몸소 거듭거듭 - 마지막으로 또 가장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 자기 백성에게 증명해 보이신 사랑과 신의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혼인*'의 마지막 단락을 보라). 그러므로 간음은 고전6:9-10; 히13:4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죄 가운데 하나이다. 구약 성경에서 간음은 예언자들이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 성실하지 못함을 꾸짖을 때 거듭거듭 쓰는 비유이다(호2:2-3; 3:1; 렘2:2-3; 3:8-9; 5:7; 9:2,14; 13:27; 겔16장; 23장. 신약 성경에서는 '음란한 세대'에 대해 말하는 마12:39; 16:4; 막8:38 참조. 또 약4:4도 참조). 이 불신실함을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사랑의 행위로써 극복하시고 속죄하셨으므로, 앞으로는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든 하나님 백성의 구성원 사이에서든 더 이상 그런 불신실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음행*도 참조하라. 관련용어 : 음행, 혼인
간질병
'귀신들린 자*'를 보라 관련용어 :
갈대아, 갈대아 사람[인]
남부 바벨론(바빌로니아*)의 한 지역과 그 주민들을 가리키던 이름이 나중에는 온 바빌로니아에 대해 쓰이게 되었다. 반유목민 부족인 갈대아 사람들은 아주 일찌감치 북부 아라비아와 페르샤 만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성읍 우르(창11:28)를 차지했다. 한동안(주전 800년쯤) 이들은 앗수르(앗시리아*)사람들의 봉신들이었다. 갈대아 제후 므로닥발라단이 일시적으로(주전 721-710년, 703-702년. 사39장 참조) 바빌로니아의 통치권을 휘어잡았다. 유명한 느부갓네살 2세의 아버지인 나보폴랏살(주전 626-605년)이 다스릴 때 갈대아 사람들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웠다. 그 때부터 갈대아는 바빌로니아와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천문학적이고 점성술적인 지식으로 이름난 사람들이어서, '갈대아 사람들'이란 호칭을 제사장들과 점성술가들과 학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쓰게 되었다(단2:10; 3:8; 4:4; 5:7,11의 아람어 본문이 그러하다).
갈라디아
주전 3세기부터 켈트 부족들이 살던(언어상으로 갈리아와 비슷하고 겔 말을 썼다) 소아시아 지역. 로마 사람들은 이 지역을 점령한 뒤에 이 지역에다 브루기아, 비시디아, 밤빌리아, 루가오니아, 이사우리아를 부분적으로 포함시켜 로마에 속한 지방 영토 갈라디아를 만들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갈라디아 지역 의 주민들이 수신인이라는 의견이 비교적 그럴 듯하다.
갈레[갈로]
암6:2에서는 갈레로, 사10:9에서는 갈로로 나오는 이 성읍은 북부 수리아의 상업도시인데, 주전 738년 앗수르 사람들에게 정복되었다. 그 위치는 불확실한데, 더러는 아르밧 남동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오늘의 쿨란 쾨이가 그곳일 것으로 생각한다.
감독
신약 성경에서는 감독이라는 낱말이 아직 지역 교회들을 넘어서는 직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는 않는다. 빌1:1에서는 지역 교회의 일을 돕는 자('집사*')들과는 달리 교회를 감독하거나 관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감독이라 하고, 행20:28에서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감독자'라 부르며, 딤전3:1; 딛1:7에서는 집사들과는 달리 교회를 이끄는 사람을 감독이라 하고, 벧전2:25에서는 포괄적인 뜻으로 예수님을 감독이라 부른다('교회 지도자*'도 보라). 관련용어 : 교회, 교회 지도자
감사제
'화목제*'를 보라. 관련용어 : 제사, 제사장
요단 동쪽 지파인 갓 지파의 운명(창30:11; 49:19)에 대해서는 겨우 몇 가지 확실한 기록만 성경에 나올 뿐이다. 갓 지파가 수13:24-28에서 묘사한 지역 전체를 차지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모압 임금 메사의 비문에 따르면 갓 지파는 주전 840년경 아르논 북쪽에 있는 자기들의 땅에서 멸망당했다. 그렇지만 갓 지파는 르우벤 지파 북쪽에 한 지역을 추가로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민32:34-36의 야셀과 욕브하 참조).
갓몬 족속
'가나안 족속들*'을 보라. 관련용어 : 가나안(사람)
강퍅
신구약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느끼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가 강퍅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이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할 수 있지만(출8:15,32; 9:34; 시95:8), 사람이 강퍅해지는 것은 또한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일 수도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이나 무리에게 주권적으로 행하심으로써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시려 하기 때문이다(출10:1-2; 11:9-10). 강퍅해지는 경우마다 그 배후에는 다소 똑똑히 알아볼 수 있는 동기가 숨어 있다. 바로의 경우에는 사람을 신격화하는 애굽 종교의 경향과 또 나그네 백성에 대한 탐욕스런 착취가 그 동기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 덕택이지 바로의 관대한 처분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이사야는 자신의 선포로 이스라엘을 강퍅하게 하도록 보내심을 받는다(사6:10.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기 해설을 보라). 신약 성경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에 마음 문을 닫았다(막4:12)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사6:10을 이끌어 쓴다. 롬9-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이라는 문제와 씨름하는데, 이 불신앙을 바울은 또한 강퍅함으로 풀이한다. 물론 이런 강퍅함이 최종적인 것일 수는 없고, 구속사적인 목표에 쓸모가 있다. 곧 이방인들이 믿음에 이르고 나면, 이스라엘도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이다(롬11:25-32).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인 강퍅함은 늘 사람이 먼저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한(하나님에게서 돌아섬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된) 결과라는 사실이다. 강퍅함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될 수 있고 비롯된다고 해서 사람의 자유와 책임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실히 요청된다.
개종자
'나그네*'를 보라.
거룩한 자(들)
구약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하나님에게 가장 자주 쓰고(이를테면 사1:4; 29:19; 30:11; 렘50:29; 호11:9; 합1:12),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께 특히 가까이 있고 이른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는 존재들인 천사들(욥5:1; 15:15; 단8:13)과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따로 떼어내 놓으신 백성의 구성원(신33:3; 단7:18의 '성도'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이다)들에게도 쓴다. 이 마지막 경우에 맞추어서 루터는 - 그에 앞서 라틴어 번역본이 '상크티'(거룩한 사람들)라는 낱말을 썼듯이 - <시편>에서 하나님 및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한 자들에게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루터는 자기가 그렇게 한 까닭을 자신의 <시편> 머리말에서 밝힌다. 루터는 당시 숱하게 떠돌아 다니던 성인들의 이야기 대신에 <시편>을 내세우려 했던 것인데, <시편>에서 참으로 깨달을 수 있는 바는 이런 저런 성인 개인이 어떻게 처신했는지가 아니라 모든 성도, 곧 하나님 백성의 참된 구성원들 모두가 어떻게 처신했고 앞으로도 늘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그들이 하나님과 친구들과 적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떻게 온갖 위험 가운데서 괴로움을 겪고 견디며 순응하는지, …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께 기도 드렸고 또 대화하고 기도 드리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에 따르면 <시편>은 모든 성도들이 생각하고 말한 것처럼 기쁨과 두려움과 희망과 슬픔 가운데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또한 루터가 '성도'라는 표현을 뽑아 씀으로써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신약 성경에서 마지막 때 하나님 백성의 구성원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라 부르기 때문이다(이를테면 롬1:7; 8:27; 12:13; 고전6:2; 엡3:8. 벧전1:16-19; 2:9-10 참조). '성도'라는 낱말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진술들(출19:6)을 배경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 백성인 것을 가리킨다(단7:18,22,25,27 참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애씀과 자신의 완전함을 근거로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바울은 서신서의 첫머리에서 '부름받은 성도들'(고전1:2)이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근거로 하나님 백성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고전1:2, 30절 참조)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성도'(빌1:1)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데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관련용어 : 거룩한(거룩하신)
거룩한 전쟁
옛 이스라엘에서 땅을 점령하여 지키는 일은 민족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일차적으로는 종교적인 문제였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땅을 약속하시고 군대를 이끄셨으므로, 사람들은 전쟁을 하나님의 일로 여겼고 그런 만큼 거룩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다(출14:14; 17:16; 수5:13-15). 그리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것이 예배와 종교의식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자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야 했는데, 예배에 참여할 때처럼 정결해야 했다(신23:9-14; 삼상21:4-5. '정결한*'). 그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리고(삼상7:9) 보통은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것(삿20:23,27-28)도 전쟁 준비에 속했다. 하나님 자신이 실제로 행동하시는 분이시므로(수10:4; 삿4:14) 병력의 규모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삿7:2,7). 하나님은 두려움이 적들을 덮치게 하심으로써(수2:9; 10:10. '하나님이 두렵게 하심*') 전세를 뒤집으신다. 마침내 모든 노획물은 정당한 승리자이신 하나님께 넘겨드려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진멸*'이라고 한다.
거룩한 제비
'우림과 둠밈*'을 보라.
거룩한(거룩하신)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을 '거룩한' 것이라 한다. 제사장 전통에서는 무엇보다도 성전*과 특히 성전에 쓰이는 기구들과 제단들과 언약궤*와 '지성소*'(이는 '가장 거룩한 것'이란 뜻이다)라 불리는 가장 안쪽 공간이 거룩한 것들이다. 스스로를 '거룩하게'(성별)한 사람만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이 영역에 다가설 수 있다(민4:15; 출30:29). 하나님께 드린 제물에는 거룩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어서 각 경우에 알맞도록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제물 가운데 자기 몫을 먹을 수 있었는데('제사*'), '화목제의 감사 희생'은 온 회중이(레7:13-15), 성소에 드린 추수 예물과 또 제물 가운데 특정 부분은 제사장 가문에 속한 모든 사람이(민18:11-19), 속건제물은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레6:26-29). 제사장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속된 것', 레10:10)을 정확히 구별하여 - 또 백성이 구별하게 가르쳐 -,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역과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의 영역의 경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은 이 두 영역 사이를 중재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 거룩한 예물을 드려서 구원이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사람들의 삶 가운데 흘러들어 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전제로서 사람들이 종교의식상으로 '정결'할 것이 요구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뵈려면 겉으로 정결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정결한 마음과 올바른 행동도 요구된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거룩함을 이해하는 데 한 걸음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시15편 참조). 이리하여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19:18)는 유명한 말씀이 들어 있는 레위기 19장의 표제가 된다. 관련용어 : 거룩한 자(들)
거룩함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양식이며, 그러므로 창조에 있어 다른 어떤 존재와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사용된 어떤 물건은 그러한 목적에서 구별된 것이므로 거룩한 물건이 된다.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헌신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전통적으로 "성도"라고 번역된다(예컨대, 고전 1:2; 고후 1:1).
거제(물)
소유물 가운데 나머지 부분에서 떼내어(아마도 또한 '집어들어') 이런 몸짓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부분인데(거제물='집어든 제물'), 이는 제물 가운데서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이를테면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 같은 것(출29:27-28; 레7:32,34; 민6:20). 관련용어 : 제사, 제사장
건지다
"구원"을 보라.
겉옷
이스라엘의 평상복은 속옷* 하나와 겉옷 하나로 되어 있었다. 겉옷은 실로 짠 큰 사각형의 천을 어깨 위로 입을 수 있게 한 것으로, 옆으로 팔을 낄 수 있게 구멍이 있었다. 사람들은 또한 물건을 겉옷에 싸서 날랐고(이를테면 출12:34; 삿8:25) 잘 때는 겉옷을 이불 대신 썼으므로 겉옷을 전당잡히지 말아야 했다(출22:26-27). 겉옷으로 쓰는 사각형 천의 네 귀퉁이에는 민15:37-40; 신22:12에서 규정한 술*을 달았다. 관련용어 : 속옷, , 옷술
게달
아라비아 사막에서 유목하는 장사꾼들인데, 싸움꾼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시120:5; 사21:16-17; 42:11; 60:7; 렘2:10; 겔27:21. ).
게바
'베드로*'를 보라.
게헨나
"지옥"을 보라.
겐 사람
이스라엘 사람들과 친척이 되는 미디안 부족인데 반 유목민으로서 유다 지파의 땅에 유랑하다가 나중에 유다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 듯하다(삼상15:6; 27:10; 30:29). 겐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던 자들이었던 것 같다(출2:16-22; 민10:29; 삿1:16).
겟세마네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기름 짜는 곳'을 뜻하고 감람 산 서쪽 기슭에 감람나무가 우거진 동산을 가리키는데, 거기에 (아마도 허물어진?) 기름틀이 있었던 것 같다(마26:36; 막14:32).
곡식 수확을 하는 과정에서 밀의 알곡으로부터 분리된 짚의 쓸모 없는 부분이나 그루터기(시 1:4; 마 3:12; 눅 3:17).
겨자(씨)
그 씨는 극히 작으나 나중에 큰 관목으로 자라나는 나무. 예수는 극히 작은 시작에서 큰 능력으로 성장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 이것을 사용하였다(마 13:31-32; 막 4:30-31; 눅 13:18-19).
결례 규정
'정결한*'을 보라.
결혼
'혼인*'을 보라.
경건한 사람들
'하시딤*'을 보라.
경문
유대인들은 기도 드릴 때 긴 가죽끈으로 이마와 왼쪽 팔에 가죽 상자를 단단히 매달았는데, 그 안에 성경 말씀을 적은 양피지 띠를 보관해 두었다(신6:8 참조). 예수님 당시에 경건한 사람들은 온종일 이 경문을 차고 있었다(마23:5). 관련용어 : 하시딤
계약
"언약"을 보라.
계피
출30:24에서 '계피'로(겔27:19에서는 '육계'로) 옮긴 히브리 낱말과 시45:8에서 '육계'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동아시아가 원산지인 나무의 향내 나는 꽃과 잎을 가리키는데, 그 속껍질로 계피 향료를 만든다. 관련용어 : 향료
고관/ 관리
"통치자"를 보라.
고라
민16장에 따르면 고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오는 동안 모세와 아론이 지도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다가 250명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망했다. '고라 자손', 곧 일련의 <시편>(시42편; 44-49편 등)을 지은 것으로 등장하는 음악가 집안이 이 고라와 관계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고레스
주전 539년에서 530년까지 바벨론을 통치한 바사의 둘째 왕으로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고르반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가리키는 이 낱말(레1:1-2,14; 민7:3의 '예물')이 초기 유대교에서는 막7:11에 인용된 것처럼 헌물을 드리겠다고 맹세하는 말의 첫마디가 되었다. 이 말로써 사람들은 성전을 자기 소유물의 유일한 상속자로 삼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바친 소유물은 그 임자라도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못한다. 이런 소유물의 사용권도 임자가 죽어서 모든 것이 성전에 속하게 될 때까지만 임자에게 인정될 따름이다. 이런 방식으로 아들이 - 경건의 허울 아래 - 어버이에 대한 부양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관련용어 : 제사
고모라
'소돔*'을 보라.
고산
유브라데 강의 지류인 하볼 상류에 있는 앗수르* 지방. 주전 722년에 앗수르로 사로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 정착했다(왕하17:6; 18:11). 관련용어 : 앗수르
골고다
골고다는 해골을 뜻하는 아람 말 '굴골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이름은 예루살렘 성벽 앞 북동쪽의 황량하고 바위가 많은 언덕이 해골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한데, 그 언덕은 처형 장소로 쓰이던 곳이었다( 참조).
곰팡이
하등균류에 속하는 미생물의 하나로서 동식물에 기생해서 그것을 상하게 한다. 특히 습한 곳에서 잘 번식한다. 성경에서는 "썩는 재앙, 깜부기" 등으로 번역되었다(신 28:22; 왕상 8:37).
공관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세 책을 요한복음과 구별해서 말한다. "복음서 개론"을 보라.
공성(술)
어떤 성의 방어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그 성을 직접 공격하기 어려울 때 공성술을 쓴다. 보통은 성읍을 벽(겔4:2; 17:17; 21:22; 26:8의 '운제')으로 둘러싸서 방어군이 빨리 뚫고 나가지 못하게 막고 또 바깥에서 양식을 공급하는 길을 막는다. 신20:20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시설을 만들기 위해 과일 나무를 베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공격군은 이 벽 뒤에 진을 치고 서로 보면서 연락할 수 있었다. 사마리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런 식으로 성을 공격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몇 해가 걸릴 수도 있었다(왕하17:5). 성벽에 구멍을 뚫어 성안으로 밀고 들어가게 하려고 공격군은 흙더미(사29:3의 '대', 렘32:24의 '흉벽', 겔4:2의 '토둔', 겔17:17; 21:22; 26:8의 '토성')를 쌓아 그 위로 자기들의 진지에서 성벽으로 나아가서 성벽을 뚫는 기계(겔4:2; 21:22; 26:9의 '공성퇴', 1마카9:67의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들이댔다. 이 기계는 바퀴로 굴릴 수 있는 받침대 위에 움직일 수 있게 매단 나무 둥치들이나 때로는 쇠붙이를 붙인 나무 둥치들을 실은 것인데, 이런 기계로써 성벽을 때려 무너뜨리려고 했다. 또 바퀴로 굴릴 수 있는 큰 방어막(겔26:8의 '방패', 나2:5의 '막을 것')을 만들어 수비군의 화살이나 창이나 돌을 막았고, 성벽이나 탑에서 내리붓는 끓는 기름이나 역청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욥19:12도 참조.
공의
'의*'를 보라.
공회
예수님 당시 유다 공동체의 최고 관청인데 그 의장은 대제사장*이었다. 공회(산헤드린, 마5:22 등)는 가장 유력한 제사장들('대제사장*들')과 지도적인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명망 있는 평신도들의 무리들을 대표하는 71명의 남자들로 이루어졌다. 로마 사람들은 공회의 세속적인 전권은 제한했으나 종교적인 결정에 있어서는 그 권위를 인정했다. 관련용어 :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
공회/ 공회원
히브리어로 "산헤드린"으로 불리는 유대의 최고 관정으로서, 주전 2세기부터 주후 2세기까지 존재하였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관계되는 종교적인 사건이나 일반 민간 사건을 다 관장하였다. 그 회장은 "대제사장"이었고 약 70명의 공회 회원을 가졌다. 이 공회는 사형 선고 이외의 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요 18:31을 보라). 사형 선고의 권한은 로마 정부가 자신들의 권한으로 전속시켰다.
관리
일반적으로는 '경찰상의' 일정한 권한을 지닌 감독관을 말하는데, 이들은 특히 재판(민11:16-17의 '유사'와 신1:15의 '패장')과 민병대 소집(신20:5,8-9의 '유사')과 전쟁 준비 감독(수1:10-11의 '유사')과 공공 업무 감독(수8:33; 23:1-2; 24:1의 '유사'가 이런 경우인 듯하다)에도 관여했다. 왕상 4:5-19에 따르면 솔로몬은 12'관장'을 두었는데, 이들은 본디 솔로몬에게 속한 지방 영토의 행정관으로서 한 달씩 돌아가면서 궁정의 양식을 대어야 했다. 왕상5:16에서는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3,300명의 감독관들이 있었다고도 한다.
관정
'브라이도리온*'을 보라.
광야
마3:1; 막1:4의 '광야'는 여리고 언덕 위의 요단 골짜기를 뜻한다. 거기에는 강 바로 가까이에만 식물이 자랄 뿐이다. 본문 사건의 발생 장소인 '광야'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행위(출15:22 등)를 떠올리게 하고 궁극적인 구원이 동터 오리라는 희망을 일깨워준다(호2:14-15 참조). 예수님 당시 셀롯 당원들*의 저항 운동에서 광야는 메시야가 스스로를 드러내시며 이스라엘 초기의 기적이 되풀이될 장소로 거듭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회
교회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일반적으로는 시민들의 모임을 의미한다(행 19:32,39,41에서와 같이). "70인역본"에서는 흔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회중을 의미했다. 신약에서는 이 낱말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공동체, 더 자주는 지역적인 모임을 가리켰으나(행 11:22,26; 20:17; 고전 1:2; 계 1:4), 어떤 경우에는 세계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했다(마 16:18; 엡 5:23-32).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모이는 별도의 건물을 가지지 않고 개인의 가정, 대개는 잘 사는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다.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전형적인 가정의 수용 인원은 보통 30명에서 40명 선이며, 최대한 50명으로 추측된다.
교회
구약 성경에서 '회중'은 아주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임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여호와 앞에' 한데 모여서 해마다 명절을 지키고 가르침을 받거나 판결도 집행하는 백성이다(출12:3; 35:1; 민27:15-23; 신23:2-4,8-9; 삿20장). 대부분의 경우 이는 남자들만의 모임이었다. 구약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에서는 회중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들을 '에클레시아'로 옮겼다. 신약 성경에서도 쓰는 이 개념은 문자적으로 '불려 나온 자'(문법상으로는 여성)를 뜻한다. 헬라 성읍의 '에클레시아'는 자유민들의 모임인데, 본디는 성읍에 관한 온갖 결정을 내리는 소수를 가리켰다. 신약 성경에서 '에클레시아'가 이런 세속적인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이를테면 행19:39의 '민회'). 신약 성경에서 보통 말하는 '에클레시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과 죄에서 불러내어 모아두신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뜻하고, 이를 <개역한글판>에서는 '교회'라고 옮겼다. 마16:18에서 예수께서는 '내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의 모임인 세계 교회를 가리킨다. 마18:17의 교회는 신자들이 서로 잘 알고 서로를 고쳐주고 도와줄 수 있는, 어떤 특정 지역의 교회를 뜻한다. 신약 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가 이런 뜻으로('지역 교회') 가장 흔히 쓰인다. 그와 아울러 또한 공간이 넉넉한 개인 집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에 대해서도 쓰인다(이를테면 롬16:5; 고전16:19). 행2:46의 짤막한 기록에서는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볼 수 있다. 곧 성전에서는 지역 교회의 전 교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한편, 가정가정에서는 개별적으로 모여 서로 사귀고 성만찬을 거행하고 함께 식사하며 여러 가지 영적인 경험을 서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관련용어 : 교회 지도자, 감독
교회 지도자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부분적으로 유대교의 본보기를 좇아 한 무리의 장로*들이, 또 부분적으로는 - 헬라의 결사 단체에 있는 특정한 직책들을 본뜬 듯한데 - 감독*들 및 집사*들(빌1:1; 딤전3:1,8)이 이끌어 갔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교회 지도층이 한데 어우러진 경우에는 장로들의 임무와 감독들의 임무가 구별되지 않았다(행20:1720:28과, 또 딛1:5딛1:7과 견주어 보라). 감독들도 처음에는 협의체의 임무를 수행했다(빌1:1). 신약 시대가 지난 뒤에 비로소 교회 지도층의 여러 가지 형태가 서로 뒤섞이고 합쳐져서 한 사람의 감독 아래 장로들의 모임이 있고 거기에 집사들이 덧붙는, 고대 교회의 직무 질서가 완전한 꼴을 갖추게 되었다. 관련용어 : 교회, 감독
구레뇨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구레뇨)는 로마 황제가 보낸 수리아 총독*이었다(눅2:2). 구레뇨의 지휘 아래 수리아에서는 주민들의 재산을 조사하여 등록하게 했다('호적 등록*'). 관련용어 : 총독
구리 뱀
'느후스단*'을 보라.
구속자
자기 사람들을 낯선 세력에서 해방하시는 하나님, 곧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출6:6; 15:13) 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사41:14; 52:9) 건져내시고, 이와 마찬가지로 경건한 자들(시19:14; 103:4)과 과부들 및 고아들(잠23:11)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구속자라고 한다. 이런 구절에 나오는 '구속자' 및 '구속하다'는 '무를 자*' 및 '무르다'와 그 히브리 낱말이 같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구속 활동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본다(마20:28; 롬3:24; 갈3:13; 벧전1:18). 관련용어 : 구원자
구스
구스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에디오피아라고 부르던 땅의 옛 이름(창 10:6-8; 행 8:27).
구스
애굽 남쪽에 있는 땅인데, 수에네(=아스완, 겔29:10)에서 남쪽으로 수단에까지 이른다. 그리스어 번역본(칠십인 역본)에서는 '에티오피아'라고 옮겼다. 창10장에 나오는 민족들의 계보에서 구스는 한편으로 애굽(6절의 미스라임)과 밀접히 관련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 홍해를 넘어서서 - 아라비아와도 관련된다(7절의 스바, 하윌라, 라아마, 스바, 드단. 대하21:16; 사43:3; 45:14도 참조). 이와는 달리 8절의 구스는 주전 2,000년경 메소보다미아로 이주해 온 코커서스 기마 민족 '카시트' 사람들(바벨론 말로 '카스')을 가리키는 듯하다. 애굽 남쪽의 나라 구스의 수도는 나파타였는데, 주전 2,000년대에 구스는 여러 차례 애굽의 지배를 받았다. 주전 8-7세기에는 구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애굽 통치권을 차지하여 그 세력으로 심지어는 앗수르 사람들에게 도전하기조차 했다(왕하19:9; 사20장; 37:8-9). 그렇지만 애굽 사람들은 주전 6세기에 다시 제 나라의 주인이 된다. 구스는 계속 메로에를 수도로 하고 제사장 계층의 통치를 받는 독립적인 나라로 존속하다가 이 제사장 계층은 주전 3세기에 무너진다. 구스 사람들은 용병으로 애굽 군대에 들어 있었지만(대하12:3; 14:8-14; 16:8; 렘46:9), 또한 유다 임금을 섬기기도 했다(삼하18:21-23,31-32; 렘38:7-13; 39:15-18). 로마 시대에는 여왕들이 - 곧 태후*들이 - 간다게라는 칭호를 지니고 다스렸다(행8:27). 옛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스는 가장 먼 나라, 곧 세상 끝으로 통했다(에1:1; 8:9에서는 '나일' 대신에 '구스'가 나온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이 미치고(암9:7; 사11:11), 또 구스 사람들도 언젠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나아와서 그를 경배하게 될 것이다(사18:7; 습3:8-9; 시68:31; 87:4. 행8:26-39 참조). 관련용어 : 에티오피아
구원/ 구속/ 구속자/ 구하다
이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안전, 위험으로부터의 구출, 혹은 병자를 고침 등이다. 구약에서는 흔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와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리켰다.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그들의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신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신 32:15; 시 27:9; 눅 1:47; 딛 1:3)과 예수(눅 1:69; 엡 5:23; 딛 1:4; 요일 4:14)는 다 같이 구주로 불린다.
구원자
구약 성경에서 구원자는 하나님(사43:3; 45:15. 시17:7에서 '구원하시는 주'로 옮긴 히브리 낱말도 본디는 '구원자'란 뜻이다)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려움에서 건지셔서 '구원'을 이루실 때 쓰시는 사람들을 가리킨다(삿3:9,15).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도 하나님을 가리켜 구원자(헬라 말로는 '소테르')라 하지만(눅1:47; 딤전1:1; 딛1:3. 이 구절들에서는 '구주'라고 번역했다), 그 밖에는 오로지 예수님께 이 칭호를 쓴다(눅2:11; 요4:42; 행5:31; 딤후1:10; 딛1:4; 벧후1:1; 요일4:14에서는 '구주'로, 빌3:20에서는 '구원하시는 자'라고 옮겼다). 예수님을 구주(=구원자)라 부름으로써 신약 성경에서는 고대 사람들이 여러 신들 및 공익에 이바지한 바가 큰 훌륭한 사람들을 - 그 누구보다도 로마 황제들을 - 구원자라 부르던 전통과 의도적으로 경쟁하고 또 그것을 반박하는 셈이 된다. 관련용어 : 구속자
구주
'구원자*'를 보라.
국민
'땅의 백성*'을 보라.
굴레
"재갈"을 보라.
굵은 베
"베옷"을 보라.
궁창
창1:6-8; 시19:1에서 '궁창'으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단단히 다져놓은 것, 망치로 넓게 펴놓은 것을 뜻하므로 두꺼운 판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얇은 금속층 같은 것을 가리킨다. 옛 중동 사람들은 하늘을 엄청나게 큰 둥근 지붕이나 접시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 하늘 위로 하늘 바다가 있는데, 그 물이 비가 되어 내리고, 그 바다 위에 하나님의 거처가 있다고 생각했다(시104:1-3). 관련용어 : 하늘, 하늘 바다
권능
"표적"을 보라.
권세(잡은) 자
롬13:1; 딛3:1의 '권세 (잡은) 자들'은 국가 정부 기관이나 관청의 권력자들을 가리킨다.
"언약궤"를 보라.
귀신
사람을 해치는 힘을 가진 "악령"으로서, "마귀"의 사자와 종으로 생각되었다.
귀신
성경에는 사단* 말고도 숱한 귀신들이 나온다. 귀신(헬라 말로 '다이모니온', 이를테면 마7:22; 막1:34; 요8:48) 또는 더러운 귀신(문자적으로는 '더러운 영', 이를테면 마10:1; 막1:23; 눅4:33) 또는 악귀(문자적으로는 '나쁜 영', 이를테면 눅8:2)는 사람을 사로잡아 완전히 부릴 수 있는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영적인 존재를 가리킨다('귀신들린 자*'). '더럽다'고 한 것은 이들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곧 귀신들린 자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이다('정결한*'). '벙어리 귀신'(막9:17)은 귀신들린 사람을 벙어리로 만드는 귀신을 가리킨다. 또 성경에서는 민족들의 신들도 귀신 같은 힘을 지닌 존재로 이해한다(고전8:5; 10:20). 레17:7에서 '숫염소*'로 옮긴 히브리 낱말을 더러는 '염소귀신' 또는 '들귀신'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관련용어 : 귀신들린 자, 사단
귀신들린 자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켜 '귀신들린 자'라고 한다. 신약 성경에서 증언하듯이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류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려준다. 곧 인류는 때때로 자신들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신들을 망치는 세력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숱한 병들, 특히 정신적으로 병든 모습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행동을 사람들은 귀신의 영향으로 돌렸다.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써 귀신들을 몰아내실 때, 이는 악에게 다스림을 받던 세상에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마12:28; 눅11:20)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을 이기셨다는 표가 된다(눅10:18). 관련용어 : 귀신, 사단
"통치자"가 권위의 징표로 가지는 짧은 막대기. 이 "규(圭)"를 사용함으로써 족속이나 국가의 권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창 49:10; 겔 19:11,14), 나아가 하나님의 권력에도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시 60:7; 108:8).
그나스 족속
'가나안 족속들*'을 보라. 관련용어 : 가나안(사람)
그노시스
1세기 끝 무렵에 그리스도교회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고 2세기에는 고대 교회가 격렬하게 싸웠던(딤전6:20-21 참조), 후기 고대의 한 정신 사조를 가리켜 '그노시스'라고 한다. 그노시스의 밑바닥에는 물질과 몸에 속한 것에 대해 아주 비관적인 태도가 깔려 있었다. 이것들은 낮고 악한 영(나중에 생긴 '그리스도교' 그노시스에서는 이 영을 구약 성경의 하나님과 같게 보았다)이 창조한 열등한 것들로 통했다. 사람의 가장 깊숙한 데 있는 본질적인 것은 이 나쁜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불꽃인데, 이 불꽃은 태초의 타락(우주적인 사고라 하는 것이 더 낫다) 때문에 물질 가운데로 쫓겨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스스로는 알지 못하고(더러는 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자신이 본디 어디서 왔으며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빛의 나라에서 한 심부름꾼이 와서 사람을 자기 망각의 잠에서 깨우고 본질적으로 사람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본디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전해 주어야 한다. 이런 지식(헬라 말로 '그노시스')에 이미 '구속'의 길이 있는데, 구속은 자신이 신적인 종류의 존재인 것을 돌이켜 생각하는 데서 실현되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열어주는 길로 빛의 나라에 돌아감으로써 완성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 그노시스 주의자들에게 '구속'은 개인의 죄에 대한 인식이나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 죄에서 풀려난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일종의 우주 경영상의 사고를 꿰뚫어보고 이를 취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뜻의 '구원'은 영혼의 불꽃을 물질 세계에서 철저하게 끄집어 내는 것이므로, 몸의 부활 사상은 의미를 잃고 '그리스도교' 그노시스 주의자는 자기는 자신의 참된 존재에 대한 '지식'에 이르렀기 때문에 장래에 닥칠 것으로 기다리는 부활은 이미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딤후2:18). 이런 종류의 '지식'을 깨달은 사람은 물질을 깔보고 현세의 질서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질서가 존속하도록 애쓰지도 않으며, 세상에서 져야 할 모든 책임을 회피한다. 특히 '그리스도교' 그노시스 주의자들이 자기들은 구약 성경의 율법*에서 가르치는 바들에서 자유롭고 그것들을 넘어서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율법은 낮은 영에게서 비롯되었고 그 영은 이 율법을 가지고서 자기의 창조물들이 늘 기능을 발휘하게 만들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노시스 주의자들이 세상과 몸을 멸시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 성경 바깥의 증언들에 따르면 주로 - 엄격한 금욕 생활로 나타나는데, 특히 혼인과 성을 적대시하는 점에서도 나타나고(딤전4:1-5 참조) 부분적으로는 그와는 반대로 - 삶을 보존시키는 - 윤리적인 질서를 일부러 무시하고 파괴하려는 방종주의로 나타난다(유7-8,18절). 관련용어 : 가현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다윗의 친위대(삼하15:18). 이 칭호의 뜻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그렛 사람들은 삼상30:14에서 남방*(=네겝)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남쪽 이웃으로 등장하는데, 주전 1,200년경 바다 민족들이 쳐들어 올 때 그리로 온 듯하다. 블렛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 블렛과 블레셋은 사실 같다 - 이들은 갑돌(=그레데)에서 왔다(렘47:4; 암9:7). 외국 용병들로써 친위대를 만드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룹
"생물"로도 불리는, 날개가 달린 천적(天的)인 존재.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현존을 상징한다. 그 날개를 펴서 속죄소의 "언약궤" 위를 덮었다. 출 25:18-20; 겔 1:5-13; 10장; 계 4:6-9를 보라).
그룹
짐승 모습과 사람 모습이 뒤섞인 날개 달린 존재. 그룹은 옛 중동의 여러 그림에서 파수꾼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서 그룹은 사람들이 에덴* 동산에 돌아오지 못하게 낙원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나온다(창3:24). 두 그룹이 성전* 지성소의 언약궤*(왕상6:23-27; 8:6-7) 곁에 서 있었거나 언약궤의 덮개 위에 있었다(출25:18-22).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켜 하나님이 '그룹들 위(또는 사이)에 계신(또는 좌정하신)'다고 말한다면(삼상4:4; 시80:1), 이는 그룹들이 옛 중동의 여러 그림에서 통치자의 보좌를 받치는 기능을 맡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예언자 에스겔이 본 '보좌 수레 환상'도 이런 그림에 상응한다(겔10:1. 1:26 참조). 그룹 형체들이 붙어 있는 언약궤를 사람들은 눈에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의 보좌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스도
처음에는 신분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서 히브리어 "메시야"에 대한 그리스어. 그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 예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보내신 구세주와 주가 되시므로 그리스도라 불리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헬라 말로 '크리스토스')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하고 메시야*를 표현하는 히브리 낱말을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는 본디 칭호였지만 이미 신약 성경에서 자주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예수 그리스도'). 그렇지만 이 낱말이 본디 지녔던 칭호의 특성은 그 뒤로도 여전히 효력을 끼쳤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점을 의도적으로 분명히 하는데, 특히 - 순서를 바꾸어서 -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말할 때 그러하다. 예수님의 온갖 칭호와 존칭('인자*', '주*')에 해당되던 바가 특히 메시야 그리스도 칭호에 해당된다. 곧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다음에서야 또 그것을 근거로 하여 이 호칭이 마지막으로 분명해졌고 그 뜻하는 바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다시 사신 분에게 이 칭호를 쓰면서, 다른 모든 칭호와 존칭은 옛 내용을 없애고 그 대신 새로운 - 궁극적인 - 내용으로 채움으로써 정화시키는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개념이 예수께 적용되면서 그 내용이 마지막 때에 완전히 채워진 것이다. 이제 이 개념으로써 선포하는 것은 더 이상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어떤 메시야가 아니라 먼저 또 무엇보다도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과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나서셔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시기 시작한 메시야이시다(막15:26병. 롬3:24-25; 5:6; 8:34,39; 14:9,15; 고전1:13,17,23; 2:2; 5:7; 8:11; 15:3 같은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도 칭호나 이름의 쓰임새 참조). 요일5:1에서는 '그리스도'가 '아들*'과 같은 뜻을 지니고, 예수께서 요1:1-18이 뜻하는 바처럼 사람 되신 구주이신 것을 표현한다. 관련용어 : 메시야
그리심
세겜 근처의 산(과)인데, 이스라엘 이전 시대에 거기에 옛 성소가 하나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나온 뒤에 그곳을 자기들의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중심지로 삼았다(요4:20 참조). 관련용어 : 사마리아 사람
그모스
모압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 요시야 때까지는 예루살렘 동쪽에 그모스를 위한 제단이 하나 있었다(왕하23:13. 왕상11:7 참조). 모압 임금 메사는 그가 새긴 한 비문에서 그모스가 자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성읍들을 진멸*시켰는지를 언급한다.
그발
유브라데 강 가의 바벨론*(바빌론)에서 동쪽으로 갈라져서 나중에 다시 유브라데 강과 합치는 큰 운하를 가리키는 듯하다(겔1:1; 3:15).
그술
요단 상류 지역과 바산 사이에 있는 아람 계통의 작은 왕국인데 수13:13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도 독립국가로 남아 있었다. 다윗은 그술 임금 달매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이 나라와 관계를 맺고자 했다(삼하3:3). 이 혼인에서 태어난 아들인 압살롬은 이복 동생 암논을 죽인 뒤에 그술의 외할아버지에게 보호를 요청했다(삼하13:37-38). 수13:2; 삼상27:8에 그술 사람들이라 불리는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은 애굽 국경 가까운 남쪽 지방('남방*')에 살았다.
금식(일)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죄나 다른 사람의 죗값을 치르려고 금식, 곧 음식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지만 또한 슬픔 때문에서나 기도를 뒷받침하려고 음식을 삼가기도 했다. 금식은 보통 하루 동안(24시간) 했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더 오래 했다. 몇몇 선생들의 견해에 따르면 오래 금식할 때는 밤에 음식을 조금 먹어도 괜찮았다. 에4:16에서는 밤에도 전혀 먹고 마시지 않고 사흘 동안 하는 엄격한 금식에 대해 말한다. 온 백성이 금식하고 애통하는 참회일을 선포하는 것은 곧 닥칠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거나(욘3:4-9) 하나님을 심하게 모독한 죗값을 치르기 위함이다(왕상21:8-12). 사람들은 더러 금식하며 기도 드리면 자동적으로 응답이 뒤따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언자들은 이런 오해를 강력하게 반박하고 그보다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것을 요구했다(사58:3-12; 렘14:11-12; 슥7장).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뒤로는 규칙적으로 금식일을 정해 놓고, 그 날 백성은 예배 드리는 가운데 자기들의 운명을 한탄하고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호소했다(슥7:3,5 참조). 예수님 당시에는 매주 두 번씩 금식하는 것이 경건한 사람들의 관습이 되었다(눅18:12; 막2:18 참조). 그렇지만 유일하게 공식적이고 온 백성이 지켜야 할 금식일은 속죄일*이었다(행27:9의 '금식하는 절기'). 신약 성경에서도 금식의 관습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공적으로 활동하시기에 앞서 40일 동안 하신 금식(마4:2)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보낸 40일과 일치한다(출24:18).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의 경우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을 동안'(막2:18-20병)에는 금식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교회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을 내보기에 앞서(행13:1-3), 또 장로*들을 세우기에 앞서(행14:23) 금식했다. 고후6:5; 11:27에서 바울은 금식을 자기 훈련의 기회로 이해한다.
금식/ 금식일
종교적인 신앙 훈련 방법으로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1년에 하루 "속죄일"(레 23:26-32)에 금식하도록 되어 있으나, 국가적인 위기(욜 1:14)에는 더 금식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규칙적으로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금식하였다(눅 18:12).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지상 생애 동안은 금식하지 않았다(막 2:18-20).
기념(제)물
레2:2; 5:12 등을 따라 제단 위에서 하나님께 불살라 드리는 소제의 일부('제사*'). 이 제물로써 겨냥하는 바는 하나님이 제사 드리는 자를 좋은 뜻으로, 곧 복 내리실 뜻으로 기억하시게 하려는 데 있다. 제물 전체를 하나님께 드릴 생각이었다는 점을 기념물로써 하나님께 상기시켜 드리려고 한다는 해석은 그럴 듯하지 못하다. 관련용어 : 제사, 제단, 제사장
기둥
유대교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을 '기둥'들이라고 부른다. 이 칭호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예루살렘 원시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갈2:9)을 높여 부르는 말이 되었다. 이 칭호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에 빗대어 말하는 것을 상기시키고(고전3:16; 계3:12) 이 세 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받치고 있는 구성원이라는 점을 표현한다(엡2:20의 '터' 비유 참조).
기둥 머리
기둥 머리를 뜻하는 이 히브리 낱말(암9:1. 습2:14에서는 '기둥 꼭대기'라고 옮겼고, 왕상7:16에서는 다른 히브리어 표현이 쓰이고 있다)이 출25:31-36에서는 등대의 머리 부분을 가리킨다('꽃받침').
기록/ 기록되다/ 기록된 바
"성경"을 보라.
기르가스 사람
'가나안 족속들*'을 보라. 관련용어 : 가나안(사람)
기름
구약 성경에서 기름이라고 하면, 이는 보통 감람(올리브) 기름을 뜻한다. 감람 열매를 짓눌러 으깨어서 기름이 나오면, 그것을 모아 질을 따라 분리했다. 감람 기름은 살림살이에도 쓰고 약품과 화장품으로도 썼다. 또한 감람 기름을 향료와 섞은 뒤에 임금 같은 사람들이나 특별한 물건들에 기름 붓는 데 썼다('기름 부음*'). 기름은 기쁨과 잔치를 상징한다. 관련용어 : 향료
기름 부음
기름 부음은 기름(감람 기름)을 머리와 몸에 바르거나 그 위에 붓는 식으로 했다. 이는 삶의 기쁨과 유복함을 표현하므로 상중에는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름 부음은 종교 생활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나 사람, 곧 벧엘의 거룩한 돌(창31:13)과 회막*과 제단(출30:26-29), 예언자(왕상19:15-16)와 제사장(출30:30)과 임금(삼상10:1; 16:1,13)에게 예언자나 제사장이 기름을 부었다. 임금에게 기름 붓는 것은 가나안과 애굽 지역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 배경은 기름을 부음으로써 군신 관계가 생겨난다는 생각에 있었던 것 같다. 곧 임금은 가장 높으신 임금이신 하나님에게서 권력을 위탁받았다는 것이다. 임금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삼상24:7; 시2:2)이다. 나중에는 이 칭호가 다윗의 집안에서 나는 구원의 임금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인물을 가리키게 된다('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히브리 말로는 '마쉬아흐'이다. '메시야*').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야*'를 보라.
기름/ 기름 붓다
어떤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거나 또는 그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기 위하여 올리브 기름을 붓거나 문지르는 것.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들이 왕위에 오를 때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들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불리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와 구세주로 택하여 임명하신 분을 일컫는 칭호이다. 기름 부음은 어떤 때는 그 기름 부음 받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을 상징했다(행 10:38). 기름은 또한 병을 치유하는 데 쓰였다(막 6:13; 약 5:14).
기브온
언약을 맺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 남은 옛 가나안 성읍(수9장). 사울 임금은 이들을 대상으로 섬멸전을 벌인 뒤 이 성읍을 베냐민 지파의 통제 아래 두었다(삼하21:1-6). 이 성읍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매우 중요했던 성소가 하나 있었다(왕상3:4-5; 대하1:3,13).
기사/ 기이한 일/ 기적
"표적"을 보라.
기생
"창기"를 보라.
기슬래[기슬르]
'달*'을 보라.
기업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씨족의 전체 소유지에서 개인적으로 차지하는 몫의 땅. 기업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는데, 이는 그리함으로써 기업이 씨족의 전체 소유지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팔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사도록 내놓아야 한다(렘32:7-8). 여기서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과부에 대한 의무가 생겨난다(룻4:5). 옛 소유 관계를 되살리는 것은 희년*을 통해 조절한다. 상속받은 소유는 정말 거룩하게 된 것이어서 누구이든 간에 낯선 사람이 이를 취득하면 마치 엄청나게 부당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했다(왕상21:3; 사5:8). 이스라엘 땅 및 백성은 그 전체가 여호와의 기업('소유'가 더 어울린다)으로 여겨져서, 그것들이 보존되게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다(출34:9; 신32:9; 시68:9; 렘10:16; 12:7).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선사하신 구원을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땅의 약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레20:24; 민26:53; 히11:8 참조). 이 약속이 예언적으로 새롭게 되어(사60:21; 겔47:14; 시37:9,11) 이제(신10:9; 시16:5-6)와 영원히(단12:13의 '업'='기업')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뜻하는 쪽으로 풀이된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잇대어 신약 성경에서는 '기업'(또는 '유업')과 '기업(또는 유업)으로 받다'가 각각 그리스도를 통해 선사받은 구원과 그 구원을 받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롬4:13-14; 8:17; 갈3:18; 4:1,7; 엡1:14,18; 벧전3:9; 히6:12-15. 고전6:1; 갈5:21; 엡5:5도 참조).
기업 무를 자
"친족"을 보라.
기윤
토성의 형상으로 여겼던 '삭굿'처럼 '케완'은 앗수르*바벨론*에서 섬기던 별의 신이었다(암5:26). 히브리어 본문을 전해 내려오던 사람들(마소라 학자들)은 삭굿과 케완을 그 본디대로 발음하지 못하도록 이 두 낱말의 자음에다가 '가증한 것'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식쿠츠')의 모음을 붙인 결과 '식굿'과 '기윤'이라는 꼴이 생겨났다.
기혼
옛 예루살렘 동쪽의 샘(-4를 보라). 거기서 솔로몬이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왕상1:33,38,45). 히스기야는 기혼 샘물을 성 안에 있는 실로아 못(사8:6. 요9:7의 실로암)까지 끌어들이게 했다(대하32:30. '수로*').
"주의 길", "주의 도"를 보라.
깃딤(사람)
처음에는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이 구브로에 키티온을 건설했기 때문에) 구브로(키프로스) 섬(사23:1,12) 또는 그 주민(창10:4; 대상1:7; 겔27:6)을 가리켜 깃딤이라 하다가, 나중에는 에게 해의 섬 지역(렘2:10)이나 마게도냐(1마카1:1; 8:5), 마침내는 로마 제국(단11:30)을 깃딤이라고 불렀다.
깃딧
'깃딧에 맞춘'(시8,81,84편의 표제)이란 표현의 정확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다. '깃딧'은 아마 블레셋 성읍인 '가드'에서 전해 온 악기를 가리킬 것이다. 또한 '깃딧'이 다른 여러 <시편>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낱말들처럼 어떤 노랫가락을 말하는 것이어서, 깃딧에 맞추라는 말이 '포도즙 틀을 밟는 사람들의 가락에 맞추어 불러라'(히브리 말 '갓'=포도즙 틀)를 뜻할 수도 있다.
깨끗이/ 깨끗하다
"정결"을 보라.
성경 본문에는 여러 종류의 꿀이 나온다. 곧 집에서 벌을 길러 얻은 꿀(대하31:5)도 있고 바위틈(신32:13)이나 나무 및 덤불(삼상14:25-26)에서 나는 야생 꿀도 있다. 포도나 대추야자의 단 즙 형태로 된 '꿀'도 있다(출3:17 등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꿀'은 이를 가리키는 듯하다).
은 < 독일성서공회판 해설성경전서 >
는 < 굿뉴스 스터디 바이블 >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