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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대한성서공회의 재건 및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루어진 <개역한글판> 성경 출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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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0-09-28 16:19 조회1,3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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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역한글판 성경의 출판 준비

[[성서주일 설교 자료 설명: 해방 이후,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 교회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개역한글판> 성경전서의 개정 작업과 조판 및 출판이 육이오 전쟁 중에 피난지 부산에서 완성된 역사는, 돌아볼수록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온통 혼란 속에 있을 때도 성서 사업을 감당했던 분들은 흔들림 없이 옛 철자법으로 되어 있던 <셩경개역>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개정하는 작업을 서둘러 추진했던 일은 지금 다시 돌아보아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 당시에 학교 교과서를 비롯하여 신문과 잡지 등 모든 출판물들이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성서 사업을 추진했던 분들은 성경의 철자법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임영빈 총무가 1949년 3월 취임한 후 주력한 사업은 새 한글 맞춤법을 수용한 성경전서의 출판이었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개역 본문의 철자법을 수정하여 1949년 상반기에 4복음서를 개역 한글판으로 출판했고, 이어서 성경 전체 본문의 철자법을 수정했으며, 조판 작업까지 완료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모든 일이 중단되고 말았다.

학교 교과서를 비롯하여 모든 출판물이 새 한글 철자법을 채용하자, 성서공회도 새 철자법에 맞는 개역 성경을 출판하는 것이 시급했다. 1947년 성서위원회에서 김춘배 목사가 “성경을 새로 인쇄하려면 새 철자법을 사용하자”는 안을 제기했다.

1948년에 정태응 총무를 중심으로 개역 성경의 철자법을 수정하기 시작하여 새 맞춤법을 적용한 『마태복음』을 출판했으나, 통일안의 기준에서 벗어나 많은 지적을 받은 후 중단 상태에 있었다. 임영빈 목사가 1949년 3월 제2대 총무로 취임한 후 주력한 첫 사업은 새로운 한글 맞춤법을 수용한 성경전서를 출판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의 철자법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르지 않아 시대에 뒤떨어졌던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개역 한글판 성경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일단 4복음서를 개역 한글판으로 1949년 상반기에 출판했고, 10월 말까지 3만 권 이상을 반포했다.

개역 성경의 맞춤법 수정 작업은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50년 2월에 마무리될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었다. 김태룡이 성서 위에 그대로 붉은 잉크로 수정을 하면 강병주(姜炳周) 목사가 이를 감수하고 다시 임영빈 총무가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김태룡은 이 작업이 끝나면 문교부 추천으로 강릉사범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할 예정이었으나, 임영빈 총무의 부탁으로 그 해 4월부터 공회 출판부의 정식 직원이 되어 성서의 조판과 출판을 담당했다.

1950년 4월부터 성경전서의 활자 개발과 조판 작업에 들어갔으며, 6월부터 교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성경전서 100여 페이지의 초교가 나왔을 무렵 6·25전쟁이 일어났고, 폭격으로 인쇄 공장이 파괴되면서 성경전서의 출판은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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