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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대한성서공회의 재건 및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루어진 <개역한글판> 성경 출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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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0-10-08 11:04 조회1,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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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난지 부산에서 이루어진 성서사업

[[성서주일 설교 자료 설명: 도저히 성서 사업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외국 성서공회들의 도움으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피난지에서도 최선을 대해서 성서를 보급한 담당자들이 있었기에 외국 성서공회들의 지원도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 가지 일도 저절로 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일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개정 원고를 부산으로 가지고 갔던 임영빈 총무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은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월 25일 남침한 북한의 인민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나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성서공회 직원들은 그때까지 피난을 떠나지 못했다. 다행히 경리 담당자 한순규가 은행에 예치해 두었던 재단법인 기금과 예금을 인출하여 성서공회 금고에 확보해 두었다. 임영빈 총무는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보위부에 끌려갔다가 하루 만에 풀려나왔으나, 공산당의 지시대로 매일 사무실에 나와 감시를 받았다.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임 총무는 전 직원에게 2개월분의 봉급을 주고, 각자 지혜롭게 처신하도록 했다. 이에 직원들은 개별적으로 은둔하거나 피난길에 올랐다.

성서공회도 1950년 9월과 1953년 11월에 성서회관이 두 번이나 파괴되고 불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서울을 떠나 피난지 부산에서의 사업은 생존을 위한 고투였다. 그러나 전쟁이 만든 폐허와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의 도움을 받으며, 새 철자법으로 만든 한글판 개역 성경 원고를 보존하고 마침내 출판하여 어두운 세상의 빛과 희망이 되었다.

전쟁의 화염 속에서도 한글판 개역 성경전서의 수정 원고가 항아리에 담겨 기적적으로 보존되는 일이 일어났다. 출판 담당자 김태룡은 폭격 당한 인쇄소 건물에서 사라진 100여 장을 제외한 한글 개역 성경 수정 원고를 찾아서 임 총무에게 인계했다. 이 귀중한 원고를 받은 임 총무는 부인과 큰 아들에게 몰래 시골 친척 집에 가서 숨겨두게 했는데, 이들은 원고를 김치 항아리에 담아 용감하게 먼 길을 헤치고 가서 땅속에 묻었다. 서울 수복 직전 9월 26일 화재로 성서공회 건물이 전소했을 때 수많은 성서와 인쇄용지와 서류가 모두 불타고 말았지만, 이들의 위험을 무릅쓴 조치를 통해서, 한글판 개역 성경 원고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자 임 총무는 이 1차 수정 원고를 파내어 잘 간수했고 부산에 가져가서 2차 수정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1950년 12월 공회 직원들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부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회관으로 사용할 마땅한 건물을 구할 수 없어서 우선 대청동 중앙장로교회 지하 한 칸을 빌려 사무실로 사용했다.

공회 직원들과 임영빈 총무도 1950년 12월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눈 내리는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는 먼저 가족들을 배편으로 보내고 짐은 다른 배로 부쳤다. 그리고 자신은 남아서 뒷정리를 한 후 겨우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기차 칸마다 피난민들과 화물로 가득 찼고 자리가 없어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기차 지붕에 엎드려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지붕에 있던 이들 중에는 얼어서 죽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부산행 열차에서 한글 개역 성경 원고가 다시 한 번 안전하게 보관되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임 총무는 미국성서공회 총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감격적으로 썼다.

나는 성경 수정 원고를 트렁크 속에 넣어두었으나, 마지막 순간 화물들을 보낼 때, 원고를 트렁크에서 꺼내어 나의 작은 손가방에 넣었습니다. 트렁크를 잃어버리리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무심코 그렇게 했습니다. 트렁크는 잃어버렸고 원고는 건졌습니다. 그 원고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겪은 경험을 통해 나는 기적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통해서 주어진 여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나에게 역사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살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한글 성경 수요가 급증할 것을 예상하던 임 총무는 1951년 2월 한글 성경 출판을 서두르기 위해서 일본 도쿄로 초청을 받아 갔다. 그러나 한글을 출판할 수 있는 인쇄소가 없었다. 일본인 인쇄공을 통해 활자를 주조하려고 했으나, 그들이 한글을 몰라 작업이 원만하지 못했다. 임 총무는 1952년 3월 부산으로 돌아왔다. 임 총무가 돌아오면서 남포동 1가 53번지의 2층 목조 건물을 임시로 빌려 성서회관을 마련했다. 2층에는 임 총무의 가족이 살고 아래층은 사무실로 사용했다. 이 남포동 사무소에서 일본 도쿄의 로버트슨 협동총무가 보내준 한글 성경으로 1년간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을 위해 수십만 권의 성서를 반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김태룡은 공보부의 직영공장에서 좋지 못한 활자로나마 사진 원고용 인쇄를 만들었으며, 표제를 『기쁜 소식』(Good News)이라고 붙이고 표지를 도안하여 로버트슨에게 보냈다. 이 표제의 도안은 당시에 국민학교 저학년 교과서 표제를 붓글씨로 쓴 바 있는 최수섭(崔銖燮) 씨가 만들었다. 몇 달 후 그 『기쁜 소식』 10만 부를 인쇄하여 보내왔다. 성지 사진 64매를 넣어 편집한 누가복음 『기쁜 소식』은 권당 1,500원에 판매 보급했다.
이 『기쁜 소식』은 정부가 채택한 새 철자법으로 된 첫 한글 성서였기 때문에, 전쟁 중에 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립 초중학교의 교과서로도 채택되었다. 사진이 들어간 큰 글씨의 복음서는 그림책이나 잡지처럼 편집되어 있어서 서울, 부산, 대구의 서점에서도 유치원생부터 청소년들에게까지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쁜 소식』은 1952년 한 해 동안 그 어느 책보다 잘 팔리는 책이 되어 전쟁 중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영혼의 양식이 되었다. 1882년 로스에 의해 첫 한글 복음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가 출간된 지 70주년이던 1952년에, 로스가 지향했던 아래 아가 없는 단순한 철자법을 채택한 『기쁜 소식 누가복음』이 어린이의 손에까지 들려 읽히게 되었다.
이 『기쁜 소식 누가복음』은 모두 20만권이 출판되어 보급이 되었다.

영국성서공회 지원: 성경전서 21,500권, 비용 6,350,000엔
미국성서공회 지원: 성경전서 3 0,000권, 비용 10,000,000엔
신약전서 200,000권, 비용 14,000,000엔
단편 성서 700,000권, 비용 3,500,000엔
삽화 누가복음 200,000권, 비용 3,600,000엔
미국성서공회 소계 31,100,000엔 = 86,000달러

1952년 부산에서 출간한 성서는 개역한글판 성경전서 3,000부와 단편 89,700부, 합계 92,700부였다. 그 해에 미국성서공회와 영국성서공회는 718,783부의 성서를 보내주었다.
1950~1953년 출판된 성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34종 가운데, 성경전서는 런던(1950년), 동경(1950년, 관주), 동경(1952년, 한글판), 동경(1953년 관주), 동경(1953년, 두 가지 판)에서 출판되었다. 신약전서는, 동경(1950년, 관주), 동경(1950년, 부 시편), 동경(1950년 간이국한문), 동경(1952년, 한글판, 두 가지 판), 뉴욕(1953년)에서 출간되었고, 전쟁 전에 서울에서 출판된 판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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