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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대한성서공회의 재건 및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루어진 <개역한글판> 성경 출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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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20-10-16 17:04 조회9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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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출판

[[성서주일 설교 자료 설명: 성경은 신앙생활의 토대이고 근거이고 뿌리입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난지에서 완성이 되고 출판이 된 <성경전서개역한글판>은 이후 1998년에 <개역개정판>으로 다시 개정되어 나올 때까지, 한국 교회의 유일한 예배용 성경이 되었습니다. 왜 이 성경의 이름을 <개역한글판>이라고 했는지도 역사 속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지침서입니다. <대한성서공회사 3>을 통해서 해방 이후의 성서 사업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공회는 1952년 3월 숙원사업인 개역 한글판 성경전서 출판 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추진했다. 교정을 맡은 임영빈 총무는 참고하거나 비교할 다른 역본도 없고 의논할 성서학자도 없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며 교정지를 마무리했다. 그는 영국성서공회에 보낸 편지에서 교정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교정지를 읽을 때 용서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용서는 모든 인생사에서 선한 덕이지만 교정에서만은 예외이다. 교정지를 읽을 때에는 비판적이고 속이 좁고 잘못을 찾아내고 완고하게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 결과 최선의 책이 생산된다. 나에게는 세 명의 교정자가 있다. 나는 그들에게 너그럽거나 자유롭거나 우호적이거나 포용적이 되지 말고, 오류와 잘못을 찾아내는 전문가가 되라고 늘 격려한다. 만일 그들이 읽은 교정지에서 내가 오류를 찾아낼 때는 나는 그들에게 오류와 잘못을 찾아내는 데 기술이 모자라기 때문에 교정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목회자로서 내 직원들에게 오류와 잘못을 찾는 전문가가 되라고 격려하는 내가 스스로 이상하게 느껴진다. 본문이나 지리적 문제 때문에 당황스럽다. 나는 비교할 다른 본문도 없으며, 성서학자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당시 실무에 종사했던 김태룡 간사에 의하면 출판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조판 체제는 구식대로 내리 글씨 2단으로 46배판 형으로 결정했다. 교정원으로 오인명(吳仁明; 새문안교회 장로)과 강석모(姜錫模; 연합신문 교정부장)가 임시직으로 수고했다. 한여름 더위에 작업이 강행되었는데, 임 총무는 초교(初校)에서부터 교료(校了)까지 한 장도 빠짐없이 재독하면서 직원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직접 교정을 보았다. 활자를 넉넉히 주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교지에는 복자(伏字: 해당 글자의 활자가 없을 때 다른 글자의 활자를 뒤집어서 ☒☒☒와 같이 임시로 조판한 것)가 많았고, 재교지와 3교지에도 글자가 채워지지 않았다. 고유명사 분별을 위해 인명에는 외줄로 표시했고, 지명에는 쌍줄 옆줄 표시를 했으며, 절(節) 표시에는 작은 숫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교정하는 데는 8교, 9교까지 나갔다. 최종 교정은 외부의 교열(校閱)을 받았는데, 김태룡의 은사 안신영(安信永) 선생이 수고했다. 66권의 책명 글자는 활자가 아니고 붓글씨 연판(鉛版)인데 이 글씨는 최수섭(崔銖燮) 씨가 썼다. 인쇄용지와 제책 재료는 미국성서공회가 지원했다. 책형은 국배판, 강대용(講臺用)으로 하고 장정은 견포의(堅布衣) 제본으로 결정했는데, 46배판으로 조판했으므로, 책을 펴면 좌우상하에 훤하고 넓은 공간이 있어서 시원스러웠다. 초판은 3,000부를 발행했다. 인쇄용지와 천과 판지의 면세 통관은 한순규 간사가 처리했고, 8월 중에 인쇄를 끝내고 제책 공정에 들어갔다.
책 첫 장 속 표제(標題=內題)에 1952년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뒤끝에 단기 4285년 9월 1일 인쇄, 9월 10일 발행이란 날짜가 찍힌 한글판 성경전서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책 표제(標題)의 글씨는 오인명 장로님이 받아왔는데, 국민학교 여교사라고만 알고 그 성명을 모르고 넘어갔다. 아쉽게 생각한다. 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본문을 1단 23자 23행, 상하 2단으로 구약이 1,223쪽, 신약이 399쪽 도합 1,622쪽이다. 책 크기는 가로 22cm, 세로 28.5cm. 반포 값은 얼마였나? 본래 성서에는 책값 표시를 않기 때문에 책에서는 알 수 없다. 기독공보 1952년 11월 3일자에 실린 신간 광고에서 75,000원(圓)임이 밝혀진다. 간기(刊記)를 보면 발행소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92, 인쇄소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 1가 8로 되어 있다. 이는 부산은 잠정적 임시 거처요 본거지는 서울임을 의식하고 실지와 다른 표시로 간기에 나타낸 것이다.

전쟁 중인 1952년 9월에, 피난지 부산에서 한글판 성경전서를 출판하였다. 당시의 교계신문도 “전국 교회 대망의 한글판 성경 완성”이라 하여 임영빈 총무의 담화와 함께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백만 신도 대망의 한글판 성경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의 바친 노력과 경비는 얼마만한 것이었을까? 기자는 한글판 성경 완성의 소식을 듣고 대한성서공회 총무 임영빈 목사를 찾아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고심담을 다음과 같이 듣게 되었다.
전란의 와중 전전유랑(轉轉流浪) 피난의 생활 중에서 이 거대한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금일 그 완성을 보게 된 것은 우으로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특히 산파의 역할을 한 임영빈 총무의 노력이 대단하였음은 전교계가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연내의 숙제이던 한글 철자법 성경 교정과 인쇄 출판은 근간 여러 가지 죽을 뻔 한 과정을 지내 이번에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 한글 성경의 인쇄를 시작하기는 금년 4월이고 인쇄가 끝나기는 9월 25일이다. 제본이 끝나려면 앞으로 한 10여일 걸릴 것 같다. 이 인쇄를 한 인쇄소는 피난 온 협진인쇄소요, 인쇄교정을 본 이들은 김진룡, 오인명, 강석모, 오한근 제씨며 또 임영빈 총무 안신영 선생들이다. 그들이 더운 여름 밤낮 교정을 보아 한글 성경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번 성경의 총 페이지 수는 1천 6백 14페이지로 예전 성경보다 3백 32페이지가 줄어서 책 매기도 좋고 모양도 좋게 되었다. 종이 값 인건비를 제하고 순 인쇄비와 제본비만이 1억 5천만 원이 되고 종이 값 인건비를 가산하면 2억 7, 8천만 원이나 된다. 우리는 이렇게 비싸게 박인 성경을 우리 교계에 어떻게 하여서든지 적당한 값으로 제공하려고 하여 판매정가를 7만 5천원으로 정했다. 이번에는 강대용으로 국판배판 4호 활자로 3천부만 인쇄했다.

보급판은 이 대본으로 축소 인쇄하여 추후에 만들 계획이었다. 그래서 초판을 인쇄할 때 앞뒤 판을 바꿀 때마다 한쪽 면만 인쇄된 것을 5장씩 별도로 빼서 일본의 로버트슨에게 보냈다. 그는 그것을 원고로 삼아 국판, 46판, 국반판 등 축쇄판을 1953년 도쿄에서 인쇄·제책하여 부산에 보내어 반포하도록 했다. 1952년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에서 처음으로 ‘한글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국한문’판과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옛 철자법 성서와 당시 정부에서 사용하던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따르는 새 철자법을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했다. 한글 새 철자법으로 처음 출판된 이 성경의 출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교회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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