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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예수 증언의 책, 성경

성경 : 베드로전서 1장 1-12절설교 :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금부터 2년 전, 정확히 2021년 6월 3일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곳 바이블코리아에서 우리 서울광염교회의 성경반포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우리교회 조현삼 담임목사님과 여러 교역자들이 이 곳을 방문해 대한성서공회 호재민 총무님과 바이블코리아 김영식 부사장님 등을 만나 성경반포사역과 성경제작과정에 대해 자세히 소개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우리교회는 호재민 총무님을 우리교회 성경반포사역의 파트너로 삼아 세계지도를 예수의 피 묻은 성경책으로 붉게 물들이는 비전을 품고 전세계에 성경책을 보내는 성경반포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만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교회는 여섯 번의 성경반포감사예배를 드렸고, 이번에 일곱 번째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감사예배와 기증식을 통해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남태평양을 비롯해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총 24개 나라에 18만 부에 가까운 성경책을 반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가봉, 카메룬, 세이셀, 슬로베니아, 수리남 등 전세계 5개 나라에 총 2만 1천 여 부의 성경책을 반포하는 것을 기념하며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이로써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드린 귀한 헌금으로 제작된 20만 여 부의 성경책을 총 29개 나라에 반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2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이루신 일들입니다. 이 귀한 사역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성경책을 반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바로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은 성경 66권 중 한 권인 베드로전서의 앞부분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베드로는 이 편지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몬을 제자로 부르셔서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에게 예수님과 그 복음을 증거할 권위를 주시며 그를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 예수님의 삶을 함께 한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입니다. 그러하기에 베드로는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5장 1절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베드로전서를 비롯한 신약성경은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이 증언의 책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 또한 이 땅에 오실 구원자 예수님을 미리 증언한 책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인 1장 10-11절에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구약성경의 저자인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습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러하기에 그 예언의 중심에는 바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가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 즉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은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미리 증언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 증언의 책을 읽으며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류의 소망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주와 인류의 역사 그 중심에 예수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성경 66권은 모두 예수님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가운데 미리 증언한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사도들은 그 예수님을 만났고 자신들이 목격한대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 모든 증언들이 모여 우리가 가진 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 예수 증언의 책인 성경을 힘써 반포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오직 예수님에게 우리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에 죄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우리의 거듭남, 영생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거룩한 하늘의 유업을 얻게 됩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이 은혜와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디에서 만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증언의 책인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성경을 힘써반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 8-9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바로 사도들의 증언과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고난 중에서도 영광스러운 즐거움 가운데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비록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지만 바로 예수 증언의 책인 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고 믿어 구원의 영광과 그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놀라운 은혜를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성경반포사역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길 축복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귀한 헌금을 통해 제작 반포되는 성경책이 흘러가게 될 가봉, 카메룬, 세이셀, 슬로베니아, 수리남의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그들이 그 성경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그 땅 가운데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3년 6월 9일, 바이블코리아에서 가봉, 카메룬, 세이셸, 슬로베니아, 수리남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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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성경 : 요한삼서 1장 1-8절설교 : 정은석 목사(세계로교회) 사도 요한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영적 아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라고 말합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라는 그 소식의 핵심인 진리는 무엇이고, 사도 요한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가이오의 영혼이 잘 되었다고 확신하였을까요? 요한은 당시 순회 전도자가 가이오의 집에 방문하였을 때, 그들을 처음 보았음에도 지극 정성을 다해 살피고 잘 대접해주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오에게 진리 안에서 행하고, 진리를 증언하고 있다고 칭찬하며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안에서 행한다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일이 없도다(4절)”라고 기뻐하며,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5~6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겠다”라는 말씀입니다. ‘프로템포’라는 이 단어는 “돕다, 동반하다”라는 뜻인데, 신약 성경에서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9번 사용된 표현입니다. 디도서 3장 13절에서는 이 단어가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라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하며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공급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결국 그들의 공급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전도하는 이들을 부족함이 없게 해야할까요? 단지 그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  저는 여기에 선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정돈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하는 사람이나 선교를 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들이 예전과 달리 폭이 좁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들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진리 안에 행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합당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해야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전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라고 우리를 구원 받는 사람으로 부르시고 지금 이자리에 세운 것이지요.   그러니 부족함이 없이 채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합당하심에 걸맞게 혼신의 힘을 다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혼신의 힘을 다하기 위해 부름 받은 우리들이 그 부족을 채워가는 그 모습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열방이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이 선교이고, 이런 원리로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물흐르듯 흘러갈때 하나님의 바라시고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우리는 지난 고난 주간 한끼 금식 미션펀드를 통해서 마련된 귀한 마음을 튀르키예의 복음의 증거를 위해 전달합니다. 처음에는 빵과 물을 생각하고 시작했으나. 현지에서 “우리에게 성경이 없습니다. 여기에 다른 것을 넘처나지만 성경이 부족합니다.”라며 말씀을 전달해달라고 하는 음성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미션펀드로 조성한 금액을 오늘 성경으로 만들어 튀르키예에 보내려 합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마음으로 소망하는 성경을 보내는 사역에 1/10정도 밖에 감당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합당하게 전송하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다른 것보다 누군가를 채우고 세워가는 그 일이 진리 안에 행하는 정확한 증표라는 말씀을 붙잡으며 오늘 우리가 첫 씨앗을 뿌리는 줄 믿습니다.  다시금 우리 세계로교회가 이 일에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교회 합당한 뭇별이 되길 축복합니다. 세계로교회가 다 선교사로 파송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사람들 그 일을 위해서 세움받은 사람들로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품은 목적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그 일을 더욱 알차게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 선교가 세계를 품는 그 일을 통해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데 더욱 힘을 다하고, 목회와 선교의 모든 부분에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이 증명되며 증거되는 이 사명을 힘있게 감당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보내는 이 성경이 또 하나의 가이오를 만들어 내는 귀한 역사가 우리를 통해, 성서공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은혜가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3년 8월 16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튀르키예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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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묵상하는 자의 복

성경 : 시편 1편 1-6절설교 : 양태우 목사(빛교회)대한성서공회의 해외 선교지 성경 후원사역을 알게 되어 동참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니카라과라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기독교인들 중 상당수가 성경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목회자들도 자기 성경책 없이 목회를 하고 있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부활절 헌금으로 성경 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성경의 공급이 풍성합니다. 기독교인 대부분이 자기의 성경책을 가지고 있고, 군대에서도 성경책을 쉽게 구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구치소와 교도소에서도 성경이 비치되어 읽고 싶을 때 마음껏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언제 어디서나 바르게 잘 자랄 수 있었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한국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성경책이 없었더라면 올바르지 못한 맹목적인 신앙에 갇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모르니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갔을 것이며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주님의 법에 의하여 심판의 벌을 받아 쇠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견고히 믿게 되며, 죄의 길을 돌이켜 하나님의 뜻, 의의 길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잘되는 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되고, 책임감들이 넘치고 서로 돕는 가운데 하는 모든 일들이 탁월해집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었고,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들은 황무지를 장미꽃밭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령을 받으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셔서 뜨겁게 기도했고 수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의 기도의 시작이 성경말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민족 복음화가 이루어져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반에 정직과 정의, 사랑과 배려가 확대되어 성숙한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선교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움 받던 나라에서 도와주는 나라로 도약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니카라과도 감사한 것은 많은 크리스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처럼 성경책이 원활히 공급된다면... 바울사도의 표현처럼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신앙이 기반 된 인물들이 길러지게 됩니다. 다윗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었듯이 우리도 도산 안창호 선생, 독립신문 서재필 선생, 만세운동 유관순열사,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등 역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신앙 위인들이 배출되었듯이 니카라과에도 하나님과 국민들에게 신뢰와 존경받는 인물이 배출되면 그 나라가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나라의 대세종교가 된 한국 기독교가 스스로 자정하게 하는 것도 성경말씀입니다. 말씀에서 벗어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말씀을 다시 붙잡고 실천해 나갈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주님과의 처음 사랑회복도 성경에서부터 시작되며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바른 길, 형통의 길의 발견도 성경에서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지혜를 얻은 인물들이 늘어날 때에 우리나라도 니카라과도 풍요로운 나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받은 크신 은혜를 사해 바다처럼 가둬두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갈릴리 바다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를 일으킨 성경 말씀을 통해 니카라과도 다시 일어나 중남미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길 기원합니다.   참 좋으신 주님 성경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렇게 복된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형통의 길을 담은 성경책이 니카라과 교인들에게도 전해지게 해주셔서 우리가 받은 복을 저들도 받게 하옵소서. 모든 것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위 내용은 2023년 5월 4일, 바이블코리아에서 니카라과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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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길로 삼다

성경 : 시편 1편 1-2절설교 : 김근영 목사(수원제일교회)‘본립도생(本⽴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신자의 기본은 말씀 사랑이며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데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소중히 여기라고 해서 성경책 먼지 묻지 않게 잘 관리하라는 뜻이 아님을 아시지요? 성경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은 매일 말씀과 함께 하는 삶, 매일 말씀을 의식하며 사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거기에 진정한 ‘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영생으로 가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열심은 ‘말씀 사랑, 성경 사랑’입니다. 그래서 말씀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되 특별히 설교 듣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 사랑이 한국교회를 든든히 세워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교의 방향 역시도 열방을 향해 말씀을 전하고 성경을 선물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파키스탄으로 보내지는 성경은 파키스탄 영혼을 살려낼 뿐 아니라, 그들에게 참된 복이 무엇인지,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시편 1편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의인과 악인, 즉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대조하는 목적은 악인(복 없는 사람)을 반면교사로 내세워 결국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1절에는 복 없는 사람들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시인은 복 없는 사람들을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복 없는 사람들이란 ‘하나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복 없는 사람들이 추구하려는 인생의 길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꾀를 따르고,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인생의 길로 삼고,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달콤한 자리에 앉아 자기가 뭐가 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보면 악인들과 같이 꾀가 많으면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꾀를 내지 않고 사는 내가 너무 어리석어 보여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악인들의 꾀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한낱 ‘바람에 나는 겨’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산상수훈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이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기에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어떤 반석이겠습니까?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이렇게 볼 때, 말씀의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의 인도함을 받기에,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꾀’와 ‘길’과 ‘자리’를 멀리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즉 말씀과 동떨어진 삶, 말씀을 멀리하는 삶, 말씀과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처음에는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졸졸 ‘따르는’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길이 자신의 길인 줄 착각하여 그 길 위에 떡하니 ‘서게’ 되고, 더 무서운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그 선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 줄로 확신하여 그 자리에 철퍼덕 앉게 되므로 결국 하나님과 원수 되는 위치에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자들은 날이 갈수록 성경과 더욱 가까이 해야 합니다.   D.L. 무디 목사님은 자신의 성경책 표지에 이렇게 써놓았다고 합니다. “이 책이 당신을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든지, 죄가 당신을 이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무엇을 강조합니까?  그만큼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게 될 때 우리는 죄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며, 악인들의 꾀를 부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 꾀에 현혹되지도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소망하기는 우리에게 있는 이 성경이,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보내어지는 이 성경이 우리 자신과 파키스탄 영혼들을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우리 모두를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은 신앙의 연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말씀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는 ‘말씀밀착형 신자’로 정녕 형통한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3년 9월 12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파키스탄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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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기 전에

성경 : 디모데후서 4장 21절설교 : 김명헌 목사(의림교회) 저희 교회도 지금 하나님 부르신 때를 기다리는 분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간에 임종의 시간이 되면 평상시 모습하고는 다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바울이라고 하면 위대한 종입니다. 그래서 이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만 하더라도 담대해서 찬송하고, 담대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이제 마지막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조금 다르더라는 거예요. 분위기가 이때는 위축돼 있고 자꾸 춥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정말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연약한 모습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바울 서신에 나타나있는 모든 바울의 모습보다도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인간적으로 와닿는 모습이 오늘 본문이 아닌가, 이전의 바울의 행로를 가만히 살펴보면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이 일을 하든지 아니면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핍박을 가하든지 간에 최선을 다했던 그 모습 바라보면은 ‘야... 인간으로서 범접 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어려운 일을 겪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 그 모든 일들을 분투와 같이 여기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그런 담대한 바울, 과연 바울 같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역사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신약 성경이 갖추어지고 기독교가 이렇게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예수님과 버금갈 정도로 대단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며 그렇게 칭송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하나도 안 나타나요. 나를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애환이 그 속에 담겨 있고, 배신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겨 있고,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군대 시절 생각나는 것처럼 아무리 입어도 춥다고 이야기하고, 옷 좀 가져오라고 이야기하고. 인간의 가장 연약한 점은 언제 나타나는가? 죽을 때 나타나는 것 같아요.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고 난 다음에 잘 아시는 대로 바울은 얼마 있다가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바울이 했던 이야기를 가만히 한번 살펴보자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앞에서 과연 우리는 오늘날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르완다가 어디에 있는지, 또 그 나라 안의 사정이 어떤지,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아픔이 많은 민족, 내전으로 인하여서 종족 간의 갈등으로 인하여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죽음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뿐만이 아니더라. 온 세계 곳곳에 있더라. 특히 르완다 같은 경우에 이런 심각한 부족 전쟁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속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가장 약한 인간의 모습으로서 만약에 바울을 빗댄다면 그들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Do you best, 최선을 다해라. to get here, 여기에 도착하도록. before winter, 겨울이 오기 전에. 이런 표현은 디모데후서에서 두 번 사용합니다. ‘Do your best’라고 하는 말을 두 번 사용하는데, ‘너는 속히 오라’ 또 ‘너는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 말씀이 들리기 전까지는 그런 소리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벽에 보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소리 들리는 거 아십니까? 새벽에 보면 가을 작은 벌레 소리가 얼마나 귀에 크게 들리는지 몰라요. 낮 시간에는 안 들립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보이지만 비행기 소리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더 큰 세상의 소리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바울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그 미약한 소리를 누가 듣겠어요?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알지 못하는 거죠.   칼 바르트가 하는 이야기처럼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인카네이션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기록된 말씀 '바이블' 아닙니까?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선포하는 것이 '케리그마' 설교 아니에요? 그럼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뭐냐 하면은 아마 칼 바르트는 그런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은 뭐냐?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분이 말씀이시고, 그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고, 그 말씀 속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이거예요. 성경책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가장 중요한 성경책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창세기 28장에 보면 17절에서 벧엘에서 돌을 베개 삼아 하나님 앞에 잠자다가 제사를 드렸던 야곱이 이런 이야기합니다. “두렵도다. 정말 두렵다.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문이로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그러면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었나요? 아니죠. 하나님의 집이었죠. 그런데 이곳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는 위축된 모습으로 인간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바울 사도가 아닌가요? 아니죠. 우리는 그 연약한 자를 통하여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르완다에 있는 사람, 죽어 나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오염수 문제, 일본의 문제, 중국의 문제, 아세안의 문제, 북한의 문제 이런 문제만 하더라도 너무 바쁜데 르완다까지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기도의 깊은 속에 들어가고 말씀 속에 잠기게 되면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립니다. 그건 르완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죠. Do your best, 너 최선을 다해서. to get here, 여기에 와 달라. 우리가 어떻게 갑니까? 또 가서 어떻게 합니까?   대한성서공회에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나타나지 않는, 여기 구석에서 1년 내내 아무도 만나주지도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 한 번씩 성경 보내면 이렇게 예배드리고 이런 곳 누가 기억해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우리가 고백하게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그 순간.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에, 감옥에 있을 때, 내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광야에 있을 때, 죽음의 총소리가 나를 위협하고 오늘 하루도 살아있는 것이 감사로 느껴지는 전쟁 내전의 자리에 내가 있을 때에 우리는 뭐라고 하겠느냐, 우리도 똑같은 소리 않겠어요? 나 제발 좀 살려달라고, 나 제발 좀 살려달라고. 옷을 좀 가져달라고. 그런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또 다른 측면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뭘 할까요? 행동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벧엘에 있는 야곱처럼 우리도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사실을 깨달았다면 대한성서공회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곳이에요. 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힘들 때, 외로울 때, 정말 바울처럼 열악한 속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때 깨닫게 됩니다. 아하. 내 형편이 바울과 같구나. 주님 나를 도우소서.   우리는 미약한 소리를 하지만 겨울 전에 우리를 돕는 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르완다의 내전처럼 그렇게 힘든 환경 속에 노출돼 있는 분들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겠죠. 그래서 이제 우리가 돕는 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이 돈이 가는 곳에는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빵 보내는 게 낫지, 하나님 말씀 가지고 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우린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은 뭐예요? 가장 믿음 없는 사람이 그런 소리 하는 거 아십니까? 하나님이 이미 나와 함께하는데 뭘 함께해 달라는 거예요? “하나님 나와 함께 하옵소서”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할 수 있는 소리예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는 “하나님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내가 주님과 더 가까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기도가 되어야 되는 거죠.   이 대한성서공회가 정말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이 보실 때 이곳이 하나님의 집인 것처럼 하늘의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날 때 그 갈등을 잠재우는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번에 르완다에 성경을 보냅니다.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바울 때문에 디모데가 움직이잖아요. 르완다 때문에 대한성서공회가 움직이잖아요. 오늘 대한성서공회 사람들 때문에, 직원들 때문에 여러분들 수고 때문에 우리가 기쁨으로 그 일을 또 감당하잖아요. 여러분,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 당당하게 이 일을 감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잘 아시고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평안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3년 9월 7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르완다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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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성경 : 민수기 13장 30-31설교 : 김명헌 목사(의림교회)     오늘의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가 ‘a study of history’라는 역사학에 관계되어진 책을 기술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문명권을 21개의 문명권으로 나눈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이 문명권들이 어떻게 생성되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번영을 이루는지, 어떻게 쇠퇴하는지, 침체하는지, 해체되어지는지 등 여러 과정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독특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패턴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게 되는데, 타성에 젖은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은 사회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항상 창조적인 소수였음을 21개 문명권을 통해 똑같은 패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을 기록하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에 관계되어진 이 패턴들은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 세계 교회의 역사도 동일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생성되어졌는가, 또 어떻게 성장해갔는가, 어떻게 쇠퇴해갔는가, 그리고 어떻게 침체해 가는가, 나중에 교회 문을 어떻게 닫았는가 하는 것까지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생성되었다가 쇠퇴하고 사라져간다면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은 항상 있습니다. 창조적 소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놀드토인비가 역사를 바라볼 때에 몇 가지 도전 상황이 있습니다. 그 도전은 열악한 땅, 새로운 땅에 대한 현실이 도전이 됩니다. 갑작스러운 외적의 침입, 지속적인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 이런 도전들을 어떻게 응전하는가하는 문제가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이라고 하는 새로운 땅에 대한 도전이 나타났습니다. 기존에 있던 땅에 대한 척박함이 있습니다. 출애굽 한 다음에 광야에서 그 척박한 시간을 견뎌야했습니다. 아낙 자손들, 광야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노예생활을 하다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공격해 옵니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도전에 대해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1절처럼 이야기 합니다. 대중들은 타성에 젖은 익숙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창조적인 소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대한성서공회가 하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방관합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중들의 관심과 대한성서공회의 관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남에게 성서 주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120개국에 23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진 성경을 인쇄해서 나누어주는 데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성서공회가 세워진 후 창의 끝과 같이 창조적인 소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무관심이 있었지만 땀 흘린 사람들, 눈물 흘린 기도, 그리고 피까지 흘린 사람들의 헌신 때문에 대한성서공회가 오늘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개신교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신교도 우리가 복음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땀 흘리고 피 흘리고 목숨 바친 사람들의 헌신 때문에 오늘 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서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없이 많은 땅에 대한 도전, 외세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대한민국이 이토록 성장하는 데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할 때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 순위 중 꼴찌에 해당되어질 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 경제 대국에 들어설 정도로 대한민국이 성장할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대한성서공회를 통하여, 눈물 흘리는 새벽기도의 권사님들을 통하여, 창의 끝과 같은 작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세상과 한국교회는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담대하게 신앙의 고백을 외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십만명입니다. 그 수십만명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따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중은 관심 없습니다. 대중은 협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대중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지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소리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3500년 전 광야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를 듣는다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올라가겠다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아니면 대중과 함께 정신 나간 일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대중에게 현혹당합니다. 내 앞길만 생각하여 정신 나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대중의 편협되어진 소리에, 타성에 젖은 소리에 익숙해져있는 이유는 있습니다.   33절을 보면, ‘거기서 내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열두지파의 대표 열두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옵니다. 중악 산악 지대의 길을 톻해 이스라엘을 정탐하고 오는데, 거기에 아낙 자손들의 후예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쟁하면 100전 100패입니다. 이런 사고 속에는 31절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31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사람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는 그들이 보기에 메뚜기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성서공회가 120개 나라의 234개 언어로 인쇄를 하여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과가 오기까지 이렇게 될 것을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루십니다. 끊임없이 세상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믿음에는 역사가 따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칭찬을 합니다. ‘당신들은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망의 인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대한성서공회의 믿음에는 역사라 따르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큰 교회를 이루는 것, 꿈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헌신으로 누군가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면, 나의 헌신으로 누군가가 예수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헌신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한 나라 한 민족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진다면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 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어떻게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135,000명의 미리암 군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올 때, 기드온 용사는 3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놀드토인비가 40년의 대작을 마치면서 딱 한소리 합니다. “세상은 도전과 응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끊임없는 도전 속에 믿음의 응전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택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뜻을 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2년 8월 23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모잠비크와 태국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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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말씀

성경 : 시편 119편 49-50설교 : 안희성 목사(평안교회)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미사일 공습으로 시작된 두 나라 간의 전쟁이 어느덧 벌써 4개월여가 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언론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처럼 보금자리가 파괴되어 갈 곳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다치고 전쟁 참전과 피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TV로 전쟁의 소식을 보고 듣는 우리가 보기에도 그 참상과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실제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돕는 손길들이 가까이 국경을 맞대고 이웃해 있는 나라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각계각층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의 손길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원은 식량, 의류, 약품, 돈, 무기 등 일상의 삶에 필요한 구호품들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전쟁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내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한편에서는 전쟁의 고통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것 같으면 실제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이나 의류, 돈과 같은 구호품들을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구호품들이 당장 여러 가지 부족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에 필요한 것들은 채워지면 어느 정도 부족함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또 부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신의 부족함은 물품들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공허하고 두렵고 불안한 생각과 마음은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 없고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떠한 것보다 그들의 영혼의 갈증과 부족함은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무너진 건물과 집은 다시 세우면 되고 부족한 것들은 채워 넣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워진 영혼의 고갈은 전쟁이 끝이 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과 영혼의 평화는 세상 물질로 채워질 수 없고 오직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에서 주님이 만난 여인은 외롭고 영혼이 고갈된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들의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었고 물질로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나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도 결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하고 외로웠던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고 인생의 참 만족과 행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함 가운데 있는 그들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그들 안에 있는 공허함과 두려움과 불안함은 사라지고 주님의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고백했습니다. 자신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시편 기자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난 중의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말씀이 자신을 살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망과 위로,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소망과 위로입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가운데 현지 주민이 전한 말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러시아가 무수한 미사일과 대포로 전쟁과 상관없는 국민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중했던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게 함으로써 절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드는 이 고통 속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하고 일상의 삶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진정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들에게 참된 소망과 진정한 위로를 주고 그들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생명이시고 부활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고 그들을 살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고 그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그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위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에 그들은 다시 소망을 갖게 되고 위로를 경험하고 살리심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담긴 이 성경이 그들의 손에 들려지게 되고 눈으로 읽게 될 때에 모든 영혼들이 되살아나고 구원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2년 6월 28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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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베드로전서 1:18–25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파트너가 되어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하여 갖는 세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이기 때문입니다. 3이란 숫자는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서로를 신뢰하며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반포하는 귀한 사역에 동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또한 이 귀한 사역에 헌신하는 대한성서공회의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 7월 이란으로 페르시아어성경 1,770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9월에는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 등 아프리카 3개국에 각 나라의 언어로 제작된 4만 권이 넘는 성경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으로 스페인어성경 18,000여 부를 보내게 됩니다. 이로써 총 8개 나라에 6만 여권의 성경책을 반포하게 되고 현재도 4개의 나라에 성경을 보내기로 확정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서울광염교회 성도님들과 대한성서공회가 하나 되어 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사역에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을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만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내 생명과 존재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신을 찾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있다, 저기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힘과 능력 그 자체로는 결코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보여주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거듭남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성경을 온 세계에 반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였던 베드로는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1장 21절에서 이 편지를 받는 이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어떻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영광 받으신 그 사건은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증거이자 계시입니다. 생로병사라는 실존의 한계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죄사함과 구원과 거듭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 주어진 것입니다.사도 베드로는 18-2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18-20)."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인간의 타락과 범죄함에 있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는 은이나 금 같은 재물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선행이나 고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인 열심이나 의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만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속죄함을 위해 바쳐진 그 동물과 제물은 불완전한 것이었고, 완전한 제물과 완전한 제사를 통한 완전한 죄사함과 대속을 바라보고 소망케 하는 그림자이자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완전한 제물이신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인 말세에 이 땅에 ‘성육신'하심으로 우리들을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죄사함과 대속함을 위한 완전한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제물 삼아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깨끗게 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이 십자가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온 세계에 반포하고자 하는 이 성경입니다.마지막으로 사도 베드로는 23-2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능력입니까? 거듭남의 능력입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바로 이 성경에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품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거듭나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됩니다. 이 영생과 거듭남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것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고,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마치 풀과 꽃처럼 언젠가는 마르고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썩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하지 않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 말씀입니다. 시대와 세월을 초월하여 영원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힘써 전하고 반포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후원하여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반포되는 스페인어 성경은 남미의 네 나라인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파라과이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성경을 통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그 땅에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그 땅에 전파되고 그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10월 19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니카라과, 볼리비아, 파라과이, 페루 스페인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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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얻게 하는 책, 성경

성경: 요한복음 20장 30–31절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지난 7월에 이곳에서 이란으로 보낼 페르시아어 성경 1,770권에 대한 기증감사예배를 드렸는데, 2달 만에 두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지난 6월에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10개국에 총 7만 권이 넘는 성경을 제작 반포하기로 하고 그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아프리카의 세 나라인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에 보낼 성경이 제작 완료되어 이를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뜻 깊은 자리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각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각자의 언어로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한다는 사실입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말라가시어 성경을, 탄자니아에는 스와힐리어 성경을, 그리고 말라위에는 치체와어 성경을 각각 제작하여 반포하게 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한성서공회의 권의현 사장님과 호재민 총무님을 비롯한 직원분들과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우리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성경반포사역의 파트너가 되어 성경이 필요하지만 자체 제작이 어려운 나라에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이 사역은 참으로 귀하고도 값진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생명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하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특정한 문화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문화와 언어와 민족을 초월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이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책마다 우리의 삶에 이런저런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 어떤 책도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지 2천여 년이 흘렀지만, 이 시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 역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반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러하기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친히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 영생이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성경 66권 중 한 권인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자신이 왜 이 책을 기록했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사도 요한은 왜 자신이 이 책을 기록했다고 이야기합니까? 이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일차적으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즉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 우리는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믿게 하려고 이 책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 즉 영생을 얻게 하려고 이 책을 기록한 것입니다.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처음에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외치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예수님의 뒤를 쫓아간 것이 예수님과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다른 제자들보다도 예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제자였습니다. 성경은 사도 요한을 가리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초기부터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목도했습니다. 그저 대중들 앞에 드러난 예수님의 말과 행동만을 보고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적인 장소와 시간 속에 예수님과 깊은 대화와 교제를 가지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갔습니다.요한복음은 그렇게 해서 사도 요한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예수님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사도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참된 증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요한복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고 기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됩니다.그 은혜를 받아 누린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저 자신입니다. 우리말로 쓰인 성경을 읽으며 그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과 생명을 얻었습니다. 성경이 제 손에 쥐어졌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나 손쉽게 우리말로 된 성경을 구해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주신 은혜이자 축복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국내성경반포를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헌신하고 수고하셨던 많은 선교사님들과 성경학자들, 그리고 대한성서공회의 땀과 열정이 담겨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아직 세계 곳곳에는 성경을 구해 읽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성경을 기증하는 아프리카의 세 나라인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는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나라들입니다. 어쩌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먹을 양식이 더 시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는 말씀처럼, 그들에게는 육체의 생명을 지탱케 해 주는 양식 이상으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성경'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우리교회에서 성경을 반포할 국가가 한 나라 한 나라 선정될 때마다 교회 홈페이지에 이와 관련된 글을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그 글을 쓰면서 이 가난한 나라들의 성도들이 성경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기뻐하고 있는 사진들을 접했는데, 참으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옷도 허름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듯한 모습이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기쁨과 만족이 성경책을 품에 안고 있는 그 성도의 얼굴에서 흘러나왔습니다.이번에 우리가 제작 반포하는 성경책이 흘러가는 곳곳마다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 성경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믿어 생명을 얻으며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가졌던 그 심정을 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경반포사역에 힘쓰는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9월 9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마다가스카르 말라가시어, 탄자니아 스와힐리어, 말라위 치체와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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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성경: 로마서 10장 13–15절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오늘 이 시간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이 자리는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성경반포사역의 파트너로서 얻게 된 첫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어 성경을 제작해 성경을 목말라하고 있는 그 땅, 이란으로 보내는 뜻 깊은 자리입니다.   우리 서울광염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따라 성경반포라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해외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도와 성경을 반포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반포사역을 우리교회에 주신 일로 여기고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우리에게 주시며 이 사역의 귀한 파트너로 대한성서공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사역을 해 오고 있는 귀한 기관입니다. 성경이 필요하지만, 자체적으로 성경을 제작할 수 없는 나라에 성경을 제작 반포하는 사역을 대한성서공회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성경반포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가치 있는 사역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들을 어떤 사람들이라 이야기합니까?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른 채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얻기 위해 열심히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만 결국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입니다.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그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구원의 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과 길을 찾지만, 그 어디에도 참된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은, 그리고 바울은 구원받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13절에서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합니다.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주인이 되실 뿐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상관없이 이 땅의 모든 사람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값없는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식입니다.그런데 이 복음은 인간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안에 숨겨진 구원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나타내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입니까? 전도를 통해서입니다.오늘 본문 1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 기쁜 소식, 복음을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전파하기로 정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친히 인간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스라엘 땅 전역을 걸으시며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이 전도의 사역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증거했습니다.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그 예수님을 입으로뿐만 아니라 글로 증언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성경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증언하는 구약과 오신 메시야를 증언하는 신약을 통해 우리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나게 됩니다.이 성경이 가는 곳곳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한 달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이신 호재민 목사님이 주일 저녁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 땅에 성경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귀츨라프와 토마스 선교사들과 같은 분들을 통해 이 땅에 성경이 전해졌습니다. 또한 존 로스와 피터스를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그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또한 영국, 미국,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가 이 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우리말로 된 성경이 반포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이 어둠의 땅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인 로마서 10장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람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소명을 품고 이 땅에 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고 제작하여 반포하였습니다. 그들을 통해 이 땅에 좋은 소식, 복된 소식,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 귀한 열매를 지금 우리가 먹고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축복하십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축복하십니다. 이들의 헌신과 땀과 열정은 하나님 앞에서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 귀하고 복된 사역을 한국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이 복음을 세계에 전파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성경을 전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 달 전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조현삼 목사님과 함께 대한성서공회의 파주 제본공장을 방문해 받은 감동이 큽니다. 우리 한국 땅에서 세계 다양한 언어로 쓰인 성경이 제작되어 세계 곳곳에 반포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출판 인프라가 열악해 성경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없는 나라들에게 성경을 무료로 보급하는 귀한 사역을 한국교회와 함께 대한성서공회가 그동안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이제 우리 서울광염교회도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대한성서공회를 파트너 삼아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증식을 하는 서아시아 이란으로 보내는 페르시아어성경 1,770부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말라가시어성경 7,000부, 남미 볼리비아에 스페인어성경 6,000부, 아프라카 탄자니아에 스와힐리어성경 9,600부, 그리고 남아프리카 말라위에 치체와어성경 6,462부 등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동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5개국에 3만 권이 넘는 성경 제작 반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서울광염교회 성도님들이 드린 십일조와 헌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이 말씀으로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 그리고 한국교회를 축복하길 원합니다. 좋은 소식,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아름답다'고 칭찬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인 줄 믿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섬기시는 한분 한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동안 성서공회에서 수고한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상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일원으로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대한성서공회와 함께해 나갈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7월 6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이란 페르시아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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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생애와 성경

성경 :  히브리서 11장  23-26절설교 : 조병우 목사(김천제일교회)    모세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면서 출생도 죽음도 아주 특이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모세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광과 고난을 다 겪은 인물이다. 왕궁과 광야에서 극단적 대조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환경에서 살았고,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았던 인물이고 가장 귀한 지위와 가장 천한 지위를 다 가졌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계시를 기록하게 하심으로써 모세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믿음과 충성의 모델과 같은 사람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영광스러움은 하나님이 한 인생의 삶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다. 모세는 이런 면에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산 사람이다.   1. 모세에게는 두 어머니가 있었다.한 어머니는 바로 공주이고 다른 한 어머니는 요게벳이다. 바로 공주는 세상적으로 볼 때 가장 완벽한 어머니이다. 가장 좋은 것을 자녀에게 다 줄 수 있는 어머니고, 요게벳은 자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어머니이다.   두 어머니는 다 귀한 분들이다. 그런데 말씀에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 공주의 아들로 칭함을 거절했다고 했다. 왜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을 포기했던 것일까, 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을 다 줄 수 있는 어머니고 다른 한 어머니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어머니인데 왜 세상 것을 줄 수 없는 어머니의 아들로 살았던 것일까?   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을 다 줄 수 있지만 믿음은 줄 수 없는 어머니이고 다른 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 수 있는 믿음을 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인생에게 진정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을 많이 줄 수 있었던 어머니가 아니라 그 자녀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들려주고 말씀을 들려주어서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어머니가 있다. 자식에게 믿음을 물려줄 수 있는 어머니와, 세상의 것을 물려주면서도 믿음은 물려주지 못하는 어머니이다. 성경을 보면 한나는 자식에게 세상 것을 물려주는 어머니가 아니다. 성전에서 자라게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어머니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공주 같은 어머니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하는 부모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부모에게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어릴 때 말씀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마귀는 미래 세대를 파괴하기 위해서 어린아이를 학살한다. 애굽 왕 바로는 어린 아기를 죽였고, 헤롯도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의 유아들을 학살했다. 이유는 미래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일벌과 여왕벌은 똑같이 암벌이다. 그러나 여왕벌은 왕대에 넣어서 로열젤리를 먹이면 여왕벌이 되고 꿀만 먹이면 일벌이 된다. 같은 벌인데 일벌은 28일-35일 생존하는데, 여왕벌은 3년-5년의 수명을 가진다. 200만 마리의 알을 낳아서 다음 세대를 계승시키는 것이다. 다른 벌이 아니다. 그 차이는 태어났을 때에 무엇을 먹였느냐 하는 데 있다.   어릴 때에 말씀의 로열젤리를 먹이면 그가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서 역사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고, 세상의 꿀을 먹이면 평생을 일에 속한 생명으로 사는 일벌로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좋은 부모는 그 부모의 하나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내 자녀가 그 부모가 섬기던 하나님을 부를 때에 그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응답이 되어야 하고 삶의 가치관이 되어야 한다.   2. 모세에게는 두 가지 삶이 있다.말씀에는 모세 앞에 두 가지 삶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나는 애굽의 모든 영광과 보화를 누리는 삶이 있고, 다른 하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보화보다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귀한 삶으로 생각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봄’이라고 했다. 삶에는 분명히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한 삶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는 삶이 있다. 모세는 세상의 영광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상주시는 삶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삶은 사명 때문에 영광이 있는 것이지 소유 때문에 영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삶에 사명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자기가 갈 길을 찾은 사람이 된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사명의 길로 묘사를 했고 그 삶을 다 달렸을 때 면류관의 영광이 있음을 말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삶이다. 성도는 아무리 애굽의 보화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다고 하더라도 사명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다.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는 성막과 장막의 동행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장막은 그들이 사는 공간이다. 언제나 성막과 장막은 함께 움직이고 함께 머물렀다. 그 동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인생의 동행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돕는 사람이 있고, 구경꾼이 있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이고, 곁에서 돕는 사람이 직분이다. 구경꾼은 알지만 영광이 없다. 뒤에서 방해하는 사람은 발꿈치를 무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계시록의 교회를 보면 방해꾼이 없는 교회는 없다.   3. 모세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120년 인생의 소원이다. 그런데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죽었다. 마치 결승점 앞에서 넘어진 것 같다. 한이 많은 죽음 같다. 모세는 자기가 소원하던 것을 눈앞에 두고 죽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인다.   그런데 모세의 죽음 이후의 모습이 나타나는 장면이 성경에 있는데,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 곁에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간 엘리야와 그리고 광야에서 죽은 모세와 함께 천국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자리에 엘리야와 모세를 세우셨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을 율법과 선지자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그 대표가 모세와 엘리야인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인생의 진정한 보상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말씀이 약속하시는 진정한 보상이라는 의미이다. 모세는 자기의 사명을 물려주고 죽었다. 즉 모세의 죽음은 사명을 물려주는 계승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모든 영광을 다 누리고 죽는 죽음이 있다. 이런 죽음을 볼 때 다 복이 있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볼 때 부자는 인간적으로는 복된 죽음을 죽은 사람이지만 음부에서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하며 물 한 방울을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모세의 죽음은 사명을 물려주고 죽은 죽음이다. 바울의 삶도 그렇다.주님의 십자가도 그렇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사명을 물려주고 간 사람이다.삼성병원에서 만든 ‘청진기’라는 영상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의 몸에는 60조 개에서 100조 개의 세포가 있다고 한다.이 모든 세포는 다 각각 다른 수명이 있는데 90% 이상이 매년 사라지고 새로 재생된다고 한다. 5년의 주기로 보면 거의 모든 세포가 사라지고 새로 태어난 세포가 그 자리를 채운다.   백혈구 14일, 적혈구 3개월, 피부 1개월, 장기는 4개월, 새로운 세포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세포는 건강한 몸이 되기 위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야 하고 옛 세포는 끝없이 죽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현상을 ‘히포토시스’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몸에 남아서 암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나 교회나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지 않으면 그것이 암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명은 물려주어야 건강한 교회가 유지된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사명을 물려주셨다.   모세의 죽음이 위대한 것은 죽음을 통해서 자기의 사명을 물려주었다는 점에서이다. 인생에게 죽음이 끝이 아닌 이유는 사명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의 돌비(십계명)를 물려주고 떠났던 사람이었다.    출처 : 대한성서공회 제136회 정기이사회 조병우(김천제일교회 담임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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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성서공회 이사장과 총무를 만나서

“성경은 인생을 바꿉니다”  <본 공회를 위해 기도하는 에콰도르성서공회 예실 카바얄 이사장>   처음 대한성서공회를 방문하려고 했을 때 한국이 이렇게 먼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무려 25시간만에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여행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성서공회는 3년 전에 에콰도르 성서공회가 다시 성서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성경을 기증해준 고마운 성서공회입니다. 이렇게 감사하고도 좋은 사역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에과도르성서공회가 조직을 정비하고 다시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에과도르성서공회의 직원들은 이러한 축복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한성서공회의 도움으로 끼추아어로 번역된 성경과 에콰도르어로 번역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파비안 코르테즈 목사님은 회심한 사람들에게 성서를 전해주고, 각 가정에서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전세계로 성서를 보급하는 대한성서공회의 사역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는 사역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인생을 바꿉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에과도르에 있는 모든 원주민들을 대신해 대한성서공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대한성서공회가 한 사역은 에과도르성서공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가 다른 나리에 성서를 보내는 일은 정말 귀한 사역입니다. 에콰도르성서공회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에과도르성서공회는 성서공회를 성장시키고 다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현재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하는 성서공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양한 언어로 높은 산악 지역에서 해안 지역까지, 계곡을 지나 정글 지역으로, 큰 도시들과 갈라파오섬까지 모든 에콰도르 지역에 전달되고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와 에과도르성서공회의 헌신된 섬김으로 에과도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변화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새롭게 나아갈 시기입니다. 그동안 대한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은 것을 넘어 이제는 다른 나라들을 도울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쿠바'에 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쿠바 사람들에게 성서를 보급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에콰도르성서공회는 성경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경과 교류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을 갖고 있어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현재 저희 미션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에과도르 인구의 14%가 개신교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대한성서공회가 뿌린 씨앗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의 협력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역을 점차로 확대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에콰도르 인구 1500만 명 중 800만 명의 사람들이 성경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성서를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성서가 생수와 같이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노력과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성서공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2013년 성서한국 여름 59권2호, 10-11쪽, 에콰도르성서공회 예실 카바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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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에서 온 편지

-81보병연대 평화교회로부터-     충성! 맹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던 3월 초 대한성서공회에서 군부대에 성서를 기증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흥분되었습니다. 제가 당시 사역했던 부대는 경기도 연천 최전방 GOP연대였습니다. 사역하는 교회는 4교회, 각 교회마다 100여 명의 장병들이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각종 작전과 근무, 훈련과 작업에 지치고 힘든 용사들이 주일이면 교회로 와서 예배를 통해 힘을 얻곤 합니다. <허원희 군종목사와 8보병연대 평화교회 장병들>   2010년 여름, 초임 군종장교로 임관한 저는 열악한 교회 상황에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긴 장의자마다 성경과 찬송가가 2권씩 놓여 있었는데 예전 <개역한글판> 성경과 구 찬송가, 심지어는 세로쓰기 성경까지 비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장병들이 성경을 찾아서 읽는 것은 소수의 몇몇 인원만 가능한 일이었고 예배시간에 그저 스크린에 의지해서 설교 본문을 읽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랬기에 대한성서공회에서 성경을 기증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음으로 400권을 신청하였습니다. 성경이 도착하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각 교회마다 100권씩, 장의자 자리 자리마다 한 명당 한 권씩 볼 수 있도록 비치를 하였습니다. 휑해 보였던 교회가 새 성경책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전방 연대급 교회에는 성경을 읽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쉽게 도전을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새 성경책이 가득 차자 몇몇 집사님들이 오셔서 저에게 먼저 성경통독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기증 받은 2주 후부터 군인가족들과 군종병들과 함께 두 달 간의 일정으로 성경통독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교회에 모여서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다과를 나누며 친교를 나누는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하다가 지쳐서 포기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너무 행복해하고 더욱 성경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GOP장병들에게 시원한 음료, 과일, 부침개 등을 준비해서 나누는 위문 행사도 계획해서 하였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들 손에 한 권씩 쥐어지고, 함께 읽어 나가니 역동적인 교회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 이후 2명의 집사가 새로 임명되고 하나님 앞에 군선교의 일꾼이 되기로 작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으로 인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기증 받은 성경은 예배시간에도 근무로 인해 교회에 못 나오는 GOP, GP, 격오지 용사들에게 아주 귀하게 전달되어 믿음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대한성서공회의 위대한 사역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새로운 부대로 전출 오게 되었지만 다시 한 번 지면을 빌어 대한성서공회의 섬김과 노력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기도로 동역하고자 합니다. 출처 : 2012년 성서한국 가을 58권 3호, 14쪽, 허원희 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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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다에서 순교한 성서 번역자 아펜젤러 목사

아펜젤러(H. G. Appenzeller) 목사는 1885년 4월 5일에 한국에 입국하여, 목사로 선교사로 교사로 한국 근대사의 개척자로 여러 방면에서 크게 기여하였다. 여기서는 ‘성서 번역자’로서 아펜젤러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 1885년 10월 13일자 아펜젤러의 편지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언더우드와 공동으로 한국어로 어떻게 신약성경을 번역할지 논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펜젤러는 입국 후 바로 언더우드와 함께 이수정역 마가복음을 개정하기 시작했고, 1887년 여름 이수정역의 개정판인 <마가의젼ᄒᆞᆫ복음셔언ᄒᆡ>를 출간하였다. 1887년 2월 7일 언더우드의 집에서 성경 번역을 위한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헤론 등이 참석하였다. 아펜젤러 전기를 쓴 그리피스는 아펜젤러가 처음부터 한국 문자를 습득하여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했기 때문에, 1년이 못 되어 한국어 문자를 자신의 사상을 담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일상 언어처럼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아펜젤러는 1886년 4월 2일의 편지에서, 자신이 아직 다른 사람의 번역을 판단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1887년 12월 25일 언더우드는 처음으로 한국어로 설교를 읽었다. 본인의 생각을 어학선생 조씨에게 들려 주면 조씨가 적당한 한국말로 표현해 준 원고였다. 1888년 3월의 아펜젤러의 일기에는 한국어를 읽는 것과 올바른 문장 형태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1890년 1월 2일 아펜젤러의 연례보고서에는,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번역했던 누가복음의 개정판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으며, 이 작업은 거의 인쇄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아펜젤러는 1890년 3월 <누가복음젼>, <보라달로마인셔> 3,000부씩을 삼문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보라달로마인셔>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튼이 로스의 로마서를 수정한 것이다. (‘보라’는 ‘바울’의 중국식 번역이다.) 1891년 6월 상임성서위원회가 로스역 개정을 포기하고, 아펜젤러와 게일에게 새 번역을 하도록 하였다. 아펜젤러는 마태복음 번역을 시작하였고, 1892년 1월 20일 아펜젤러 번역 <마태복음젼>이 임시역본으로 30부 발행되었다. 이 해에 <마태복음젼> 1,500부(1,000부는 “하 님” 역, 500부는 “텬쥬”역)가 발간되었다. 한국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번역된 첫 성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본문은 1900년의 구역으로부터 지금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까지 이어지는 성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893년 5월 16일 스크랜튼의 집에서 상임성서위원회가 열렸다. 위원회에서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트롤로프 5명을 번역자로 임명하였다. 1895년 아펜젤러의 <마태복음>이 수정되어 출판되었다. 존스는 이 번역을 “원문에 충실하고 문체가 간단명료하며 표현이 부드럽다”고 말하였다. 1900년에는 신약전서 전체의 번역이 완료되어 출간되었다. 아펜젤러가 번역을 한 본문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이다. 1900년 5월 5일 성서공회 주일, 아펜젤러는 정동교회에서 완성된 신약전서를 손에 들고 감격적으로 설교하였다. “우리는 10년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신약전서의 한국어판을 완성하였습니다. … 이후부터 나는 성경봉독을 할 때는 이 책만 사용할 것이라고 회중 앞에 광고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책은 우리 주재 전도사와, 한문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아름다운 모국어의 장점에 눈 멀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00년 9월 9일 주일은 신약성서의 번역 완성을 기념하여 정동제일교회에서 공개 감사예배를 드렸다. 1902년 3월과 4월 아펜젤러와 게일은 아펜젤러의 서재에 모여서 고린도전서 7장까지 개정하고, 성경의 고유명사 3,000개를 정리, 작성하였다. 레널즈가 목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6월 한 달은 3인이 목포에서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하였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는 성서 번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목포로 가던 도중에 군산 앞바다의 어청도 근해에서 선박 충돌 사고로 순직하였다. 2012년 6월 10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사랑의 사도 헨리 아펜젤러 순교 110주년 추모 제1회 학술대회” 가 열렸다. 아펜젤러 목사의 후손인 캐린 울프 양은 인사말에서 “아펜젤러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 있다. 한글 성서 번역과 보급이야말로 ‘아펜젤러의 계획’이었고, 그를 통하여 이루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제는 한국어 사용자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아펜젤러의 꿈이었고 계획이었다. 출처 : 2012년 성서한국 가을 58권 3호, 6-7쪽, 전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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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회에 보내는 편지(1903년)

이 글은 (곽신환 외 저, 서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2012년)에서 발췌하였다. 이 책 안에는 1902년 개역당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이상재, 이원긍, 김정식, 홍재기 등의 개혁파 인사들이 성서공회로 보낸 감사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들은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구금되어 복역 중 1903년에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904년 3월에 석방되어 옥중 동지들과 함께 연동교회에 입교하였다. 이 때 이들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유성준은 후에 (1906년)의 번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03년 1월에는 감옥 안에 도서실이 설치되고, 벙커(D. A. Bunker) 게일(J. S. Gale) 등과 중국에 있던 선교사들이 300종 520여 권의 서적을 제공하였다.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이들은 성서공회의 도움으로 많은 서적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편지를 보냈다. 특히 신구약 성경을 읽고 감옥 안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기독교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두정 홍재기 (두정 홍재기 : 홍재기는 중추원의원(中樞院議員)이었고, 출옥 후 대한구락부(大韓俱樂部) 총무 등의 일을 맡았다. 대한구락부는 친목과 문화운동을 목적으로 1905년 11월에 결성되었다. 회원은 200여 명이었며, 민중을 계몽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연설회 등을 개최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가? 진실로 하늘 아버지가 빚어내고 녹이고 감응하고 변화시킴이 아니면 어떻게 생육하겠는가? 순식간에 물욕에 가리어서 그 애초의 참된 근원을 까마득하게 알지 못하게 되니 어찌 스스로 안타깝지 않은가. 임인(1902)년 봄 갑자기 죄를 뒤집어쓰고 여러 달 포승줄에 묶여 감옥에서 보냈는데, 무슨 행운인가! 감옥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옥에 학교를 세워 뭇 죄수들을 교육하였다. 성서공회에서 이를 듣고 즐거워하여 신·구약 성경과 여러 사상가들의 교습책을 많이 가져와 배울 것을 권면하여 읽어볼 수 있게 되었는데, 여러 달 침잠하여 공부하니 뒤덮은 띠풀이 홀연히 걷히듯 갑자기 생각이 일어나 본원을 탐구하여 끝없는 경지를 회복하니, 하루라도 이 책이 없으면 안 되고 하루라도 이 가르침이 없으면 안 되었다. 모든 말씀이 측은히 여기고 애달파하는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니 하늘이 비추는 곳에 빛이 없는 곳이 없다. 항시 경외의 마음을 지니고 선을 행하고 악을 범하지 않으니 대주재이신 상제와 그리스도 예수께서 거울 같이, 형체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이 감찰하신다. 하늘에는 현존하는 도가 있어 선을 행하면 복이 되고 악을 범하면 재앙을 받으니, 나의 동포들이여! 발분하여 선을 행하고, 손을 잡고 이 진리를 함께 즐길 것을 진실로 바란다. 출처 : 2012년 성서한국 여름 58권 2호,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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