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공보 연재] 기막힌 그 말씀 (6) "말씀을 듣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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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2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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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기독공보」 인터넷 판 2025년 7월 24일자에 게재된 연재물 [기막힌 그 말씀] <6>(https://pckworld.com/article.php?aid=10741528426)을 한국기독공보사의 허락을 받아 옮겨 적은 것입니다.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아닥사스다, 주전 465~425년) 임금 일곱째 해에 에스라가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라 7:1, 8~9). 하나님의 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살펴보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입니다(라 7:12~14).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에게 백성이 요청합니다.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합니다(느 8:1). 그때는 오늘처럼 인쇄된 성경을 누구나 구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앞부분인 율법서의 핵심만 적은 두루마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나라가 망하고 백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일반 백성은 말씀을 들을 기회가 아주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목마른 백성이 에스라에게 몰려와 율법책을 소리 내어 읽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 요청을 따라 에스라는 광장에서 날이 밝을 때부터 한낮까지 두루마리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줍니다. 온 백성이 귀담아듣습니다(느 8:3). 백성들한테서 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백성들은 거친 천을 걸치고 흙을 뒤집어쓴 채 금식합니다(느 9:1). 자신들을 최대로 낮추고 깊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죄와 조상들의 잘못을 털어놓습니다(느 9:2). 말씀을 듣다 보니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오신 하나님(느 9:6~15, 19~25, 27, 30~31)께 자신들과 조상들이 잘못한 일들(느 9:16~18, 26, 28~29)이 하나하나 생각났던 것입니다.
천수백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울면서 들었던 말씀은 ‘율법의 말씀’이었습니다. ‘율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낱말 ‘토라’는 원래 ‘가리킴’, ‘가르침’을 뜻합니다. ‘율법’은 하나님 백성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길을 가리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율법’은 삶의 여정에서 발을 내디디면서 늘 따라야 할 ‘길잡이’입니다. ‘율법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토라’는 신구약전서, 성경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성경 말씀을 귀담아듣습니다. 그 말씀을 듣다가 자신과 공동체의 잘못을 깨닫고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여전히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참회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씀대로 살겠다고 새롭게 다짐합니다. 다짐한 대로 살아가기를 힘씁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서는 “복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람, 듣는 사람들, 거기에 적힌 것들을 지키는 사람들은!”이라고 합니다. 읽어 주는 사람은 한 사람이고 듣는 사람, 듣고 지키는 사람은 여럿인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갈 때까지 읽어 주는 일, 권유하는 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시게”(딤전 4:13)라고 부탁합니다. 목회자가 권유하고 가르치는 일에 늘 마음을 두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 쓸 것은 성경을 소리 내어 똑똑히 읽어 주는 일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잘 읽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부탁입니다.
인쇄된 성경책을 누구나 소지할 수 있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성경 봉독이 설교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성경 봉독 시간에는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을 온 정성 다해 잘 읽어 주기만 해도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과 교회와 세상의 잘못을 깨닫고 울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도 공동체도 지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쩌면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설교자도 설교를 준비할 때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 설교하는 내내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홀로 읽을 때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시편 1장 1~2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1] 복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는 악인들의 의논 따라 걷지 않습니다. 죄짓는 사람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비웃는 사람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2] 여호와의 가르침에 자신의 기쁨을 두고서, 여호와의 가르침을 낮이든 밤이든 소리 내어 읽습니다.” 1절 첫머리에서 복 있다고 한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주는 내용이 2절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가르침 곧 ‘토라’에 자신의 기쁨을 두는 사람, 하나님의 ‘토라’를 낮이든 밤이든 소리 내어 읽는 사람이 복 있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가르침’을 오늘 우리는 번역된 성경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 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소리 내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듣는 사람은!
박동현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은퇴, 새한글성경 구약 책임 번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