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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에티오피아 그룸 페일(Groum Pale)의 고백

스무 살 에티오피아 청년 그룸 페일(Groum Pale)은 거리의 아이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안다. 배고픔과 두려움, 그리고 좌절의 연속이다. 오늘도 이 헌신적인 기독교 청년은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 지역에서 집을 잃고 떠도는 많은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나눈다.지금 청년들과 아이들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암하릭어 성경을 읽고 있는 그룸을 보면, 늘 겁에 질려 있고 굶주려 있던 11년 전의 그룸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룸의 삶이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룸은 이웃 기독교인들의 사랑의 결실이다. 그 사랑 안에서 그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가 되었다.그룸과 그의 여동생의 부모님은 일찍이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그후로 그룸 남매는 집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며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음식을 얻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걸핏하면 병에 걸렸고, 기생충에 위가 뒤틀리기도 했고,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렸다.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내일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그룸이 아홉 살이 되던 해, ‘한나고아원’ 식구들을 만났다. 한나고아원은 집 없이 배회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단체로, 기독교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그룸 남매의 건강을 챙겨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룸은 그들의 친절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어린 시절을 길거리에서 보내면서 정말 끔찍한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제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거리의 아이로 자라면, 배우는 것이라고는, 싸움을 잘 하는 것과 모두를 의심하며 사는 것, 이 두 가지뿐입니다.”이런 그룸이 1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그리고 굳건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였다. 사람들은 놀라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모두 에티오피아성서공회에서 받은 성경을 통해서 일어난 일이었다.그룸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성경 속에 담긴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낮에는 열심히 성경을 읽고 듣고, 밤이 되면 잠이 들기 전에 낮에 읽고 들은 성경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들려줍니다. 그러면 성경에 담긴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면 그 말씀들이 제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같이 메아리칩니다. 저에게 그 어떤 것보다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성경 말씀 낭송“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제 삶이 변하고 있습니다. 저나 제 친구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함께 읽고 듣던 성경 말씀을 함께 큰 소리로 낭송하며 그 어려움을 이겨나갑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서로를 격려합니다.”이제, 그룸은 학교 졸업반이다. 게다가 그 반에서 우등생이다. 그룸은 대학에 진학하여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에티오피아가 더 나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이 모든 것은 제가 특별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다거나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오로지 저에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른 그 무언가가 없어도 예수님이 계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 분이 저의 모든 것입니다.”기증 받은 성경 자료들학교 수업을 마치면 그룸은 거의 매일 거리의 아이들이나 고아원의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자리에 있다. 에티오피아성서공회에서 제공한 오디오 성경 기계들이 있었지만, 도난을 당하기도 했고, 고장이 나서 다른 나라에 고치러 보냈다. 그래서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성경뿐이다. 그룸은 그 성경을 아이들에게 직접 읽어주곤 한다.“제가 가장 사랑하는 말씀은 제가 열여섯 살 되던 해 읽었던 말씀입니다. 바로 바울이 ‘가능한 한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던 구절입니다. 이제 그 말씀이 저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고, 이제는 그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그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조금씩 가까이 오는 것을 본다.(출처: 영국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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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제는 더 이상 학교가 무섭지 않아요!

르완다 사람들에게 학교는 무섭고 두려운 곳이다. 선생님 무섭거나 시험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지난해 르완다를 방문했던 엘렌 콘디(Ellen Condie)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르완다에서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끔찍한 1994년 대학살 사건에 있어서 교실이나 예배의 장소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대피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살 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아픔 때문에 르완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하지만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르완다를 조금씩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변화시켜가고 있는 교실이 있다.성서공회에서 파송한 ‘하나님 말씀 지키미’(GodSpeak Advocate)로 스물한 살 엘렌이 르완다를 방문했다. 엘렌의 일은 성서공회의 르완다 문자교실 사업을 알리고 모금활동을 돕는 일이었다. 르완다에서 지내는 한 달 여 기간 동안, 엘렌은 수업 준비를 도우며 현재 진행 중인 르완다 문자교실 사업의 사진을 찍었다. 그 과정 가운데 엘렌은 대학살사건의 끔찍한 이야기들과, 그 일이 르완다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가 얼마나 큰지 듣게 되었다.대학살이 있은 후, 르완다 사람들은 학교를 멀리했다. 죽음의 기억과 수많은 아픔이 학교에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가장들이 희생을 당했고,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맏이들이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국가의 기반조차 흔들렸고 학교에 입학하는 일 조차 어려워졌다. 슬프게도 희생자의 상당수가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학살 사건으로 나라의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나 학교는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오늘날 15세 이하는 의무교육에 해당하지만, 30세 이상의 르완다 사람들까지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성경 문자교실을 통해 변화가 시작되었다.르완다성서공회의 총무인 엠마뉴엘 카이주카(Emmauel Kayijuka)는 많은 르완다 사람들이 문자교실을 참여하여 읽는 성경을 통해 머리 뿐 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 깊은 곳까지 변화되고 있다고 말한다.르완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면서, 상대방을 용납하고 지난날의 도려내고 싶은 아픔들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종종 교실은 사람들이 대화의 장이 된다. 그리고는 내 이웃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르완다 성서공회는 지역 교회를 통해 지역 사회와도 함께 일한다. 각 교회에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수료한 헌신된 자원봉사자 그룹이 있다. 카이주카 총무는 좀 떨어진 지역 같은 경우는 정부의 교육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고 설명한다.2013년, 문자교실은 23,000명의 르완다 사람들과 함께 했다. 올해, 르완다성서공회는 여섯 개의 새로운 지역을 문자교실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2014년 말,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훈련을 받아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성경 문자교실을 통해 읽고 쓰는 방법을 15,720명의 르완다 사람들에게 전할 예정이다.많은 르완다 사람들에게, 지금은 배우고 움직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그들의 깊은 상처가 베인 곳,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교과서는 성경책이다. 아픔의 자리가 성경을 통해 치유의 자리로 바뀌고 있다.(출처: 호주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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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문서를 태운 부자 교인

1900년 무렵 강화 북부 해안 홍의마을에 종순일이란 교인이 있었다. 전통 유학자 출신으로 땅도 많고 여유 있던 부자였다. 그가 사는 마을에 그에게 돈을 빌려다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마을 훈장 박능일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18잘 23절 이하에 나오는 ‘용서할 줄 모르는 무자비한 종에 대한 비유’ 대목에서 멈추었다. 임금에게 1만 달란트 빚 진 신하가 그 빚을 탕감 받고 나가다가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그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고 옥에 가두었는데, 그 사실을 안 임금이 화를 내며 그를 다시 잡아 옥에 가두었다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마을 부자’ 종순일은 이 말씀을 읽고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자기에게 돈을 빌려간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빌린 돈을 갚으라는 것인가? 아니면 이자를 높이려는가?’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모였다. 종순일은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18장 말씀을 읽은 후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오늘 이 말씀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나외다. 내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것이 1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것보다 더 크거늘,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받으려 하는 것이 1백 데나리온 빚을 탕감해주지 못한 것보다 더 악한 짓이요. 그러다 내가 천국을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오늘부로 여러분들에게 빌려준 돈은 없는 것으로 하겠오.” 그는 빚 문서를 꺼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살라 없앴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교회 전도사가 증인이 되었다, 그리니 그 사람들이 모두 교인이 될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종순일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19:21)는 말씀을 읽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교회에 헌납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각 지방과 고들에 보내셨다”(눅 10:1)는 말씀을 읽고 아내와 함께 괘나리 봇짐 하나씩 메고 남쪽 길상면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 그가 찾아간 “땅 끝”(행 1:7)은 강화 주변의 작음 섬들이었다. 그는 그렇게 강화, 옹진 섬 지역을 돌며 수십 처 교회를 개척하였고 평생 가난한 전도자로 생을 마쳤다. 출처 : 2000년 성서한국 봄 46권-1호,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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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 보급의 역사

첫 한글 성경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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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성경 보급

생애 첫 성경을 받은 전 세계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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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문서를 불태운 과부 교인

강화읍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에 ‘과부교인’ 김씨 부인이 있었다. 자식도 없이 혼자였지만 재물에는 여유가 있어 복섬이란 여종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팔십이 넘어 믿기 시작했는데 교회에 나가면서 한글을 배워 성경을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태복음 18장을 읽다가 18절에서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김씨 부인은 이 말씀을 자신에 적용하였다. 그는 다음 주일 교인들을 집으로 초청한 후 복섬이를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내가 성경 말씀을 보니 우리 주인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다 같은 형제라, 어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겠소? 내가 복섬이를 몸종으로 부리는 것이 땅에서 매고 사는 것인 즉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으리요?” 그러면서 김씨 부인은 문갑에서 복섬이의 종문서를 꺼내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버렸다.  “복섬아, 지금 이후 너는 내 종이 아니다. 너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가고 싶은 대로 가도 좋다.” “마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발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말아주세요.” 김씨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복섬이를 양녀로 들이기로 했다. 종에서 양녀로 신분이 바뀐(롬8:14) 복섬이는 더욱 정성스럽게 김씨 부인을 섬겼고 김씨 부인 역시 늘그막에 얻은 딸로 더욱 기뻤다. 이 광경을 본 교인들의 감동 또한 컸다.    이런 식이었다. 한국 교회 초대 교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in a literal sense)읽었다. 강화의 어떤 교인은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실 때 했던 것처럼 침으로 갠 진흙을 맹인 눈에 바르고(요9:6) 기적이 나티나기를 기다려 선교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이 같은 ‘문자적’ 신앙을 미신적인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한국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감동을 ‘문자적으로’ 실천함으로 뒤이어 나타날 이적에 기대를 걸었다. 이처럼 한국교회 ‘개종 1세대’는 성경을 읽되 ‘해석’보다는 ‘실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성경을 읽는 한국 교회 특유의 소박한 신앙 전통이 수립되었다.   출처 : 2000년 성서한국 봄 46권-1호,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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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성서주일 포스터

2017년 성서주일 포스터입니다. 다운받으셔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논문

첫 번역 성경

첫 번역 성경 첫 번역 성경 첫 번역 성경

논문

첫 번역의 설레임

첫 번역의 설레임 첫 번역의 설레임 첫 번역의 설레임

국내

전 세계 성서가 2,935개 언어로 飜譯되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에서 발표한 ''2015 세계 성서 번역 현황 보고서(Global Scripture Access Report 2015)''에 따르면, 전 세계 6,887개의 언어 중에 성경전서는 2014년보다 21개의 언어가 더 많은 563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신약전서는 1,334개, 단편(쪽복음)은 1,038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각국 성서공회들에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존 번역본을 개정하고 새로운 번역을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기준, 20개의 새로운 번역본 및 개정본과 2개의 해설 성경이 출간되었다. 특히 2015년에는 3천 3백만여 명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28개 언어의 첫 번역이 이루어진 해로, 이 중 첫 번역 성경전서는 11개, 신약전서는 6개, 단편성서는 11개에 이른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100개의 성서 번역 완료 프로젝트’는, 2015년 말 기준 90개 언어의 번역이 완성되었고, 그 중 53개의 언어가 출판되었다. 이 중 하나인 미얀마의 쿠미 친 성경은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제작 출판되었다. 쿠미 친 신약성경은 1958년 출판되었으나 구약성경 번역을 계속 진행하기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커서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후 2001년에야 비로소 구약성경 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 교회가 번역 지원 및 성경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을 후원하면서 성경전서를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라이베리아의 경우, 수많은 에볼라 사상자가 발생하였음에도 꾸준한 성경 번역을 진행하여 새로운 버전의 두 가지 언어의 단편성서를 출간할 수 있었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번역 팀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자연재해, 테러, 에볼라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번역자들은 번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분의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앞으로 남은 언어 번역 프로젝트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다. 꾸준히 번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약 4억 9천여 명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3,952개의 언어는 성서 번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서공회들은 400여 개 이상의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성서공회연합회는 모든 사람이 성경전서를 갖게 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6-11-17 17:05:22 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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