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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원문의 뉘앙스를 잘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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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3-23

본문

 

 

안용성 (그루터기교회 담임목사)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짧은 문장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시대적 의의를 가지면서 동시에 원문을 더 정확히 옮길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짧은 번역문이 원문의 어순을 더 가깝게 옮기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가 요한복음 11:1-2입니다.

 

1 어떤 사람이 앓고 있었다. 그는 베다니의 나사로였다. 베다니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가 사는 마을이었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발라 드리고 주님의 발을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던 여자였다. 앓고 있는 사람은 그의 오빠 나사로였다.

본문에는 그동안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은 나사로라는 새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마리아와 마르다가 함께 언급되고, 마리아는 베다니에서 주님께 향유를 발라드린 그 여자라는 설명이 더해집니다. 나사로를 두 여인의 형제로 소개하는 것은 독자들이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향유 사건은 뒤에 이어지는 12장에 나오고, 마리아와 마르다는 요한복음에서 아직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가지고 나사로가 누구인지 설명하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요?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으므로 요한의 독자들은 이미 공관복음서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 여인이 베다니에서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은 마태복음(26:6-13)과 마가복음(14:3-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누가복음(10:38-42)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언급되지 않고, 나사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만 읽은 사람들은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과 마르다-마리아 자매를 별개로 알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형제인 나사로에 관해서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여러분이 공관복음만 알고 요한복음은 처음 읽는 사람이라 가정하고 11:1-2를 다시 읽어봅시다. 본문은 이러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앓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사로이고 그의 집은 베다니입니다. 그런데 베다니가 어디냐 하면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는 곳이에요. 그리고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얼마 전에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어드린 일 알고 계시지요? 그 일이 일어난 곳이 베다니잖아요. 베다니에 사는 누구였을까요? 그 사람이 바로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에요. 그러니까 나사로는 마리아의 형제가 되겠지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본문을 어순에 주의하여 읽어보면 앞에서 말한 정보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제시하며 퍼즐을 맞추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런 뉘앙스를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어와 우리말 어순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개역개정』 요한복음 11:1-2)

1 한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였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은 여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이다. (『새번역』 요한복음 11:1-2)
요한복음은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이야기를 바로 이어지는 12장에 배치하여 두 사건을 인과관계로 연결합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은 죽은 형제를 살려주신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삼백 데나리온도 단순히 낭비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과 마리아의 향유 사건을 하나로 연결하는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이렇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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