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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연재] 기막힌 그 말씀 (완) “꿇어 엎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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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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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기독공보」 인터넷 판 2025년 12월 25일자에 게재된 연재물 [기막힌 그 말씀] <완>(https://m.pckworld.com/article.php?aid=10920419072&page=1)을 한국기독공보사의 허락을 받아 옮겨 적은 것입니다.

 

“꿇어 엎드린다.” 새한글성경 마가복음 5장 22절 하반절에 들어 있는 표현입니다. 꿇어 엎드린 사람은 “회당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고 “이름이 야이로”라고 상반절에서 알려 줍니다. 원어 성서에서 현재형으로 표현한 것을 그대로 살려 “꿇어 엎드린다”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 현재형 번역은 이천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예수님께 모여든 무리들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이스라엘 땅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뛰어넘어 갈릴리 지역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께로 와서 발 앞에 꿇어 엎드린 야이로를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예수님 발 앞에 꿇어 엎드리는 야이로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생각할 만도 합니다. 이처럼 오래 전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과 야이로가 겪은 일이 바로 오늘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도록 현재형 동사를 쓴 것입니다.

 

이 현재형은 23절의 “애원한다”로 이어집니다. - “그러고는 예수님께 애원한다. ‘제 딸아이가 다 죽어 갑니다. 오셔서 딸에게 두 손을 얹어 구원해 주세요. 살려 내 주세요.’” 24절에서는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셨다”고 합니다. 25~34절에는 12년 동안 출혈병에 시달려 온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 대화를 나누신 장면이 나옵니다. 야이로 관련 내용은 35절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그 첫머리에서도 “알려 준다”는 현재형 동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이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 그 회당 지도자의 집으로부터 사람들이 와서 알려 준다. ‘따님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 선생님을 계속 성가시게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36절의 “말씀하신다”도 현재형입니다. - “그러나 그런 말이 오가는 것을 예수님이 곁에서 들으시고 그 회당 지도자에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믿기만 하세요!’”

 

38절의 “들어간다”와 “슬퍼하고 있다”도 현재형입니다. - “예수님 일행이 회당 지도자의 집에 들어간다. 예수님이 눈여겨보시니, 집이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울고, 크게 소리내어 슬퍼하고 있다.” 39절의 “말씀하신다”도 그러합니다. - “예수님이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왜 수선을 떨며 울고 있나요?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어요.’” 뒤이어 40절 첫머리에서는 과거형 “비웃었다”로 나옵니다만, 곧바로 현재형 “들어가신다”가 뒤따릅니다. -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은 몸소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함께 간 제자들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신다.” 이 현재형은 41절의 “말씀하신다”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달리다굼’ 하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신 내용을 알려주는 단락에서는 현재형 동사를 거듭거듭 사용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이 단락을 읽는 사람들을 현장으로 불러들여 놀라운 사건을 함께 경험하게 합니다.

 

이런 방식은 우리 옛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판소리 심청전의 한 대목이 그러합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자신을 팔아넘기기로 합니다. 아버지를 떠나기 직전에 얼마나 비통해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눈 어둔 백발부친, 생존 시에 죽을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막막하고, 흉중이 답답하여, 하염없는 설음이, 간장에서 솟아난다. 부친의 사시의복, 빨래하여, 농 안에 넣어 두고, 갓망건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모친분묘 찾아가서, 분향사배 통곡을 한다.” 여기서 “솟아났다”, “통곡을 했다”라는 과거형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냥 예전에 있었던 어떤 일을 그냥 담담하게 알려주는 정도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솟아난다”, “통곡을 한다”는 현재형을 씁니다. 그리함으로써 이 순간 청중들을 그 이야기의 현장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자신들이 심청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런 현재형은 복음서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2장 1~2절에서는 동사가 과거형으로 나옵니다. - “며칠이 지나서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이 어떤 집에 계시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서 더는 빈자리가 없게 되었고 문 앞에조차도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예수님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그런데 3절에서 갑자기 현재형으로 바뀝니다. - “그때 사람들이 마비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다. 네 명이 그를 들고 온다.” 4절에서는 다시 과거형으로 시작하여 현재형으로 바뀌었다가 과거형으로 돌아갑니다. - “그렇지만 무리 때문에 그를 예수님께 가까이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걷어 내고는 구멍을 크게 내서 깔자리를 달아 내린다. 거기에는 마비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5절과 8절과 10절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현재형을 다시 거듭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비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시는 그 사건을 오늘 우리가 사는 곳과 그 옛날의 이스라엘을 넘나들면서 극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2장 1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 “예수님이 지나가다가 보시니,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금 걷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세요.’ 그러자 그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박동현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은퇴, 새한글성경 구약 책임 번역자

 

 

※ 이번 회를 끝으로 ‘기막힌 그 말씀’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경 한두 절을 통해 말씀의 신학적·역사적 깊이를 차분히 풀어주신 박동현 장신대 은퇴교수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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